[강론] 삶의 청산과 퇴출의 명[박상대신부님]

2006. 11. 16. 오전 9:58:05

글자
삶의 청산과 퇴출의 명(命)

-박상대신부-

 

  오늘 복음은 부정직한 청지기의 약삭빠른 일 처리에 관한 비유를 들려준다. 그런데 복음의 비유는 주인이 청지기의 약삭빠름과 부정직함을 탓하고 있기보다는 그의 슬기로움을 오히려 칭찬하는 내용으로 끝맺는다. 예수께서도 아마 주인과 같은 입장에서 부정직한 청지기를 칭찬하려 하신 것 같다. 다만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8b절)는 말씀은 빛의 자녀들이 이를 흉내내지 말 것을 바라시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청지기의 어떤 면이 칭찬 받을만한 지를 살펴보자.

 

  비유는 어떤 부자가 고용한 청지기가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낭비(횡령)한 것이 드러나, 청산(淸算) 후 퇴출(退出)을 강요받는다. 그 동안 재무관리로 의자생활에 습관이 되었을 청지기는 앞이 막막했다. 하지만 그는 짧은 시간에 묘안을 생각해 내고 일사천리로 일을 해치운다. 묘안은 퇴출 후에도 자기를 후하게 대접해 줄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을 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빚을 삭감해 주는 방법을 택했다.(5-7절) 마지막에 가서 주인은 청지기의 이러한 일 처리를 보고 약삭빠른 줄은 알지만 그 슬기로움은 칭찬한다.

 

  청지기는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를 깨닫고 자신의 미래를 구할 수 있는 절묘한 방책을 마련한다. 청지기는 비록 부정직한 방법을 택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법을 동원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청지기의 부정직하고 비양심적인 면은 덮어두고라도 그의 슬기로움은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걱정할 줄 알고, 이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다. 예수께서도 이 점을 칭찬하신 것이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가능하면 본받으라는 것이다. 임박한 심판 앞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걱정해야 한다. 그것도 영생(永生)을 판가름 짓는 심판이라면 그 절박함이 더욱 고조된다. 청지기가 당한 청산 후 퇴출이라는 실직(失職)의 위기처럼 최후의 심판을 눈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회개(悔改, Metanoia)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다. 이젠 머지않아 우리도 자신의 삶을 청산하고 이 세상에서의 퇴출을 명(命) 받을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회개의 삶으로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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