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06.11.10. 금
| 루카 복음 16장 1-8절 |
|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
|
|
|
| 선심 쓰면서 살아갑시다 장재봉 신부 |
|
‘영민한 집사’를 생각하는데 뜬금없이 다윗왕의 고백이 떠오릅니다(1역대 29,14 참조).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는 것 가운데 과연 내 것이 무엇입니까?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과 쉼 없이 뛰고 있는 맥박조차 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물며 세상의 재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꼭 한 가지 내가 원하는 바대로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내 것’이 있지요. 말 그대로 하느님께서도 어쩔 수 없는 그것, 바로 ‘내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잇속에 밝은 집사는 솔직히 고약합니다. 주인이 빌려주고 받아 놓은 빚 문서를 조작해서 그 대가로 훗날 대접을 받으려는 심보이니까요. 착하신 예수님께서 무슨 이유로 이러한 비유를 사용하셨을까 싶을 정도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것을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느님께서는 모자람이 전혀 없으신 헤아릴 수 없는 재산가이십니다. 그렇게 부자 아버지 재산인데 푹푹 좀 나눠 쓰면 어떻겠습니까? 하느님 것으로 선심 쓰는 일, 얼마나 신나는지 해본 사람은 압니다. 아, 오늘 필리피 교회에 편지를 쓰던 바오로 사도가 울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흐른답니다. 하늘의 것으로 자기네 뱃속만 채우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하네요. 탕진과 나눔의 차이는 이렇게 얇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
|
|
| 자선 |
|
두 사람이 길을 가는데 눈먼 거지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은 동전 한 닢을 던져주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모른 체 지나쳤다. 이때 죽음의 신이 나타나 두 사람에게 말했다. “거지에게 적선을 한 사람은 앞으로 50년 동안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적선하지 않은 사람은 곧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지금이라도 거지에게 적선을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뒤에 배 밑바닥에 구멍이 났는지 안 났는지를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것은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미드라시>라는 책에 실려 있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 유대인들은 자선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절대적인 책임이자 의무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의 강요에 의해 베푼 자선은 마음에서 우러난 자발적인 자선에 비해 절반의 가치밖에 없다고 여긴다. … 유대인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자선이나 분수를 넘는 자선을 금한다. 부자라면 수입의 5분의 1 정도를 허용하고, 보통 가정의 경우 10분 1까지 허용한다. 그들이 내놓은 돈은 당연히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진다. 이런 체다카 정신이 오래도록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모두가 친형제처럼 가까워질 수 있었고, 오늘날도 기쁜 마음으로 형제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족의 도움에 기대어 일을 게을리하고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호하게 축출되는 것이 유대인들의 율법이다. 어쨌든 지금도 유대인들은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자선이 일상화되어 있고, 그 도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주는 사람조차 기쁜 마음으로 살아간다. 사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와주는 기쁨과 보람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지 못한다.
이상각 | 북폴리오 | <부자아빠 영재엄마를 만드는 유대인의 지혜>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