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중 제32주일 2006.11.12.‘과부열전(列傳)’? - 이기락 신부님

2006. 11. 16. 오전 9:49:56

글자

‘과부열전(列傳)’?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다보면 한 폭의 프레스코(fresco) 그림이 떠오릅니다. 프레스코 화법은 벽이나 천정에 칠한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수채(水彩)로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려져서 색도 흐려지고 그림 윤곽도 잘 보이지 않고 남은 것은 시간에 마모된 흔적들. 그럼에도 그 그림 속 풍경이 마음에 남는 것은 기억과 추억으로 대상을 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렙타 마을의 과부와 마르코 복음의 가난한 과부가 그렇습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절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임금(기원전 871-852년경)이 다스리던 때이니 정말 까마득한 옛날입니다. 앞에서 가뭄을 장엄하게 선포한 엘리야는 시돈의 사렙타로 가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지요. 사렙타(현재 레바논)에서 어떤 과부가 밀가루 한 줌과 기름 조금으로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려 합니다. 과부와 그 과부의 아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방인이었던 엘리야 예언자. 한 끼 식사로는 너무나 빈약한 밀가루 한 줌으로 구워낸 빵. 이런 광경들이 인물 표정도 잘 나타나지 않는 지극히 단순한 프레스코 화(畵)를 보는 듯합니다. 화려한 유화도, 사실적인 그림도, 추상화도 아닌 지금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아마 흙반죽이 마르기 전 붓이나 끌로 거칠게 그려 넣은 그림들이라 할까요.

   고개 숙인 채 사렙타 과부가 서있고 먼저 구워진 작은 빵 하나를 들고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겠지요. 그 다음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비를 내리실 때까지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단지와 기름이 마르지 않는 병.

   어찌 보면 엄청난 기적이 성경에서는 화려한 수식과 장식을 다 떼어낸 한 폭의 프레스코 그림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엘리야의 가장 모진 원수와 같았던 이제벨 왕비의 고향인 이방인 마을의 과부 하나에까지 하느님의 돌보심과 자비가 미친다는 의미를 더 부연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마르코 복음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가난한, 아주 가난한 어떤 과부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헌금함에 동전을 넣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예수님께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렙톤 두 닢 - 지금 우리 돈으로 200원이나 될까. 그런 돈을 넣으면서 자랑스럽고 당당할리는 없겠지요. 본인에게는 그것이 가진 돈 전부이지만 남이 볼까 조심스러워 과부는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동전을 넣고 있습니다. 렙톤 두 닢은 하루 생활비라기보다는 그야말로 한 끼, 입에 풀칠할 정도의 돈이겠지요. 그렇다면 사렙타 과부의 밀가루 한 줌과 같습니다. 그 돈을 말없이 넣고 있는 과부와 그 과부를 바라보시는 예수님.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다 바쳤다는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과부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해석만을 강조한다면 복음의 참된 핵심을 비켜간 것이겠지요. 지극히 어려운 처지에서도 믿음으로 순종하여 응답하는 사렙다 과부처럼(1열왕 17,5) 가진 것 모두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예루살렘 과부의 마음과 그 마음을 말없이 받아주시는 예수님.

   생각해보면 지극히 높으신 분께 인간 세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분께 드리고 싶은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겠지요. 또 그 마음이 담긴 어떤 것들이겠지요. 가톨릭성가 221장에 소개된 성 이냐시오의 기도처럼 “내게 주신 자유와 나의 기억과 지력, 나의 의지. 또 내가 소유한 모든 것들”이겠지요. 그야말로 당신께는 지극히 하찮은 것들을 주님께서는 기꺼이 또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사렙타 마을과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의 장면들을 마치 한 폭의 프레스코 화(畵)처럼 저는 서서 오래도록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앞부분의 율법학자들의 명예욕과 재물욕과는 확연하게 다른 단순한 이 그림을 보다 보니 마치 제가 그림 속에 있는 듯합니다. 저는 이 그림들 한 쪽에 조그맣게 그려져 있을까요. 아니면 그림 속의 여백으로라도 남아있을까요. 어떤 모습이든 주님의 눈길이 머무시는 작은 흔적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
햇님만 내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서 숨어서 피고 싶어라.”(최민순, 『두메꽃』에서)

이기락 타대오 신부·가톨릭교리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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