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동선 마태오 신부 │ 설악동 성당 주임
정성어린 이 제물
인간이 무엇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것은 강요된 행위나 착취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감사의 뜻인 제물 하느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아무런 아쉬움이 없으시지만, 우리 인간이 당신께 받은 것 중 일부를 바치도록 하셨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임을 알기 시작하면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플루타르코스가 언제 어디를 가나 제단이나 신전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든, 제물을 바치는 제단은 유사시대 이전에도 있었고, 신전은 극장이나 체육관보다 먼저 있었다. 이렇듯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지냄은 인간됨을 뿌듯이 느끼는 행위였다. 신명기와 레위기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시면서 제물을 가지고 제사에 참여하도록 말씀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높은 분에게, 친한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것을 내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내가 아끼는 분이 우리 집에서 식사라도 하신다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른다. 봉헌은 행복의 요소 행복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마음은 행복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마르쿠제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누구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20,35 참조). 인간이 무엇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것은 강요된 행위나 착취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된 보람을 느끼게 되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받기만 하는 신자가 수동적이요 비판적이라면, 봉헌을 하는 신자는 능동적이고 교회할동에 참여하며 발전시킬 뿐 아니라 자기들도 행복을 느낀다. 소록도에 갔을 때 직원들이 일러준 말이 내 뇌리에 새롭다. "여기 오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은 육지에서 무엇을 얻어다 신자들에게 주려고 하고 목자들은 오면 신자들에게 십일조 외에 헌금을 물리게 하는데도 삶의 보람은 천주교신자보다 개신교신자들이 더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바꿔보면 천주교 신부는 개신교 목사보다 더 보람을 느낀다는 말도 된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며(갈라 6,7;코린 9,11 참조),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두어 들인다.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 인간의 판단은 겉모습에 있지만 하느님은 속마음을 보신다(1사무16,7 참조). 봉헌에 대한 인간의 잣대로는 양을 재지만, 하느님은 그 정성을 보신다.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어느 본당에 항상 일등만 하고 싶어하는 교우가 있었다. 그 가정은 당시 장사가 잘 되어 남들보다 3~4배의 수입을 올렸기에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다. 그러던 중 본당이 가난하여 행사 때 각 가정에서 추렴을 하였는데, "우리 집에는 끝으로 오세요. 남보다 많이 내야죠" 하길래 기대를 가지고 갔다. 수고한다는 말과 함께 듬뿍 주기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그는 누가 가장 많이 냈나 훑어보고는 만원 낸 사람이 최고라면 거기에 5,000원도 1,000원도 아닌 백원을 얹어 10,100원을 내서 일등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장난일까? 너무 심하다!
십일조로 하느님을 시험해보라! 십일조를 내면서 하느님께서 축복하시는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라는 말이다. 내 수입의 1/10을 내며, 내 시간의 1/10조로 하루 두 시간 정도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는 다면 죽어서 영생을 얻기 전에 벌써 이 세상에서 큰 축복을 체험할 것이다.
" 주님, 받으소서! 정성어린 이 제물." |
[춘천]연중 제32주일2006.11.12.정성어린 이 제물 - 허동선 신부님
2006. 11. 16. 오전 9: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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