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님! 우리는 오늘 복음말씀을 통해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렙톤 두 닢, 렙톤은 신약시대에서 가장 작은 화폐단위였습니다. 복음에서 렙톤 두 닢을 콰드란스 한 닢으로 계산했는데, 이 콰드란스에 64배를 곱해야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용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요즘 기준으로 7만원으로 잡아 계산하면 렙톤 두 닢은 대략 천원 가까운 금액이 됩니다. 과부가 봉헌한 천원,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어 이 과부의 봉헌금을 극찬해 주십니다. 왜 그러셨을까? 참된 봉헌은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으로,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그분의 섭리하심에 맡기는 동시에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는 자발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언급된 과부는 단순히 자기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봉헌의 의무를 지킨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여인은 하느님께 쓰고 남은 여분을 바치지 않고 가난과 궁핍 속에서도 먼저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봉헌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렙톤 두 닢, 생활비 전체인 천원짜리 한 장을 그녀가 자신을 위해 남겨 둘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이 여인은 자기 소유의 일부가 아닌 자신의 온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말씀을 실천한 것입니다(마태 22,37 참조). 이 여인은 자신이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과부의 봉헌이 있은지도 벌써 이천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거쳐 오면서 진정한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라는 말씀이 ‘예수님께서는 천원짜리만 좋아신다’는 괴상한 논리로 바뀌진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매 주일마다 천원짜리가 수북한 봉헌바구니는 그러한 논리가 이미 확신의 차원에 도달한 것을 반증하는 것은 또 아닌지… 우리는 봉헌 때마다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정한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도 2천년 전에 한번 칭찬받았던 렙톤 두 닢(천원)의 형식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
[전주]연중 제32주일 2006.11.12. 천원짜리 봉헌금-염태성 신부님
2006. 11. 16. 오전 9: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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