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2007.3.21.수
| 요한 복음 5장 17-3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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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주셨기 때문이다.?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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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의 주인이신 예수 허찬란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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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의 전반부 주제, 곧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에 대해 오늘 복음은 다섯 번에 걸쳐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권한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는 권능을 펼치시며 이 권능은 사람을 또한 심판하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살려야 할 대상은 실상은 죽어 있음을 뜻합니다. 바로 죄와 어둠에 파묻혀 살아감으로써 영혼이 마비된 인간 모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죽은 이들을 살리러’,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표현들은 모두 우리가 받아야 될 생명, 곧 다시 살아나야 될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니코데모가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느냐고 따졌던 대목을 상상해봅시다. “걱정마세요. 나는 잘 살고 있어요. 크게 잘못하는 일 없이 살고 있어요”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더라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깊이 묵상해보면 예수님이야말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는 생명의 은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하며 예수님이 걷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공허하며 예수님을 닮지 않은 생은 막다른 골목과 같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해도 예수님을 내 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미리 체험한다면 생명으로 나아는 길, 그 길은 참으로 행복한 삶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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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 찾아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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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는 그 무렵 전쟁 중이었다. 어디를 가도 보이는 건 폐허뿐인 땅. 먼지와 무너진 집, 떠도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디에나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아이들. 아이들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심마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또 그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바로 다음 끼니에 먹을 것이 없다는 그 사실뿐이었다. 전쟁고아들이 모여 집단으로 살고 있는 천막촌을 찾아갔을 때, 나는 숨이 막히는 암담함을 느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현실, 뼈만 남은 아이들의 몸과 우리를 바라보던 그 맑은 눈, 그리고 아이들이 걸쳤던 누더기…. 우리가 가져간 몇 안 되는 옷가지를 먼저 집으려고 뻗쳐대던 그 앙상한 손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수없이 버려지는 옷이 쌓이는 우리의 집 앞,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지는 멀쩡한 옷이 많은 서울이 생각났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상자마다, 봉투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득 채워가지고 모으기 시작한 건. 그렇게 나의 물건 모으기는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이 내 물건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길에서 만난 팬일 수도 있고, 시골길에서 마주친 꼬마이거나 내 주변의 동료일 수도 있다. … 계획 없이, 너무나 우연하게, 이 사람이야! 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내 물건을 주인에게 전달한다. 자, 이제 내 물건들의 주인을 찾아야 할 때다. 자그마한 잡동사니들에 간단하게 나의 ‘심(心)’ 자를 쓰고 날짜를 적어 넣는다. 필요하면 간단하게 포장도 하고, 그 다음에 가방에 몇 가지씩 넣어둔다. 어쩌면 내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 이것들을 요긴하고 쓸모 있게 써줄, 그래서 하찮은 물건들이 제구실을 해내 빛나는 물건이 되게 해줄 ‘제 주인’을 만날 때, 그때를 놓치지 않고 전해줄 수 있기 위해서. 노영심 | 열림원 | <노영심의 선물>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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