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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은 못 버린다.
얼마 전 두 아이가 대안학교(중학교)에 입학한 지 1년 6개월 만에 졸업했다. 한 명은 20살, 다른 한 명은 21살. 어렵고 힘든 기간이었지만 고생한 보람으로 졸업장을 받게 돼 우리는 거창한(?) 졸업축하를 해주기로 했다. 물론 당사자들도 그런 우리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졸업식 날이 오자 아이들 태도가 바뀌었다. 졸업식에 아무도 오지 말란다. 창피하다는 게 이유였다. 졸업식에서 꽃다발을 주고, 받고 사진을 찍는 게 뭐가 창피하냐고 물으니, "이 나이에 중학교 졸업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좋아 꽃다발을 받고 사진을 찍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평생에 한 번하는 졸업식이니 나중에 후회 말고 사진 한 장 찍자"고 했으나 화까지 내면서 싫단다. 그동안 참고 다녔지만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단다. 우리가 보기엔 괜한 고집 같지만, 이 아이들에게 굉장한 자존심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이 늘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내가 죽으면 죽었지, 자존심은 못 버린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 버틴 것도 자존심 때문이란다. 그날 졸업한 아이 가운데 한 아이가 전에 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시험기간에 학교에 갔는데 평소에는 학교에 나오지도 않던 남학생이(시험기간에도 빠지면 졸업하는 데 문제가 있어 시험 때만 온다고 한다) 자기 자리에 앉아 있기에 내 자리라고 했더니 "가난한 북한 기집애 자리가 어디 있느냐"며 자리를 내주지 않았단다. 그래서 그 아이와 싸우고 시험도 보지 않은 채 집에 돌아와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선포하고 한 달간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 뒤 담임선생님과 계속 연락해 다시 학교에 다니게 돼 드디어 졸업을 했다. 새터인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결정해 탈북을 감행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정신력을 지녔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남쪽 동년배 아이들과 비교하면 자신감과 자부심이 떨어지고 오히려 열등의식을 느끼고 소위 이 아이들이 말하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상황'에서는 폭력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강한 자존심에 대한 집착이나 예민함은 열등의식에 대한 반대 표현일 듯하다. 남쪽 사람들의 심한 편견은 이들에게 열등감을 더해 주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이들은 대화를 거부하고, 요지부동 자기들의 상한 자존심만 얘기하며 자존심을 유지하고자 모든 것을 다 포기한다. 이 아이들이 자신의 약점을 보여주고 스스로 자신의 현재 처지를 인정하며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할 수 있게 되려면 자신들이 탈북자이기에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 해소될 때일 것이다. ♧ 노공순 수녀(살레시오 수녀회, 꿈사리공동체 대표) ♧ |
[묵상] 자존심은 못 버린다ㅣ노공순 수녀님 /2007.03.20
2007. 3. 21. 오전 9: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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