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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 4 주간 수요일 2007. 3. 21. 토평동
이사 49, 8-15 요한 5, 17-30
그 넓은 바다가 아름다운 것도, 저 깊은 산골 계곡이 아름다운 것도, 기나긴 여정을 흐르는 강이 아름다운 것도 멈추어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그 움직임은 창조주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결코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움직이십니다. “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당신의 일은 아버지를 드러내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것. 예수께서는 고관의 아들을 고쳐주시고,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계속해서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시며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것,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우리가 자신 안에 갇혀있지 않고 깨어나 당신과 함께 살아있기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시는 아버지와 아들의 친근함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아들은 도무지 아버지를 벗어나서 살 수 없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십니다. 사랑 때문에 말입니다.(요한 5,19-20) 여기에 사랑의 신비가 있습니다. 서로 사랑한다면 자기에 대한 집착이 없이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의 신비입니다. 서로에게 의지해서 마치 자신은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것 같아도, 서로가 둘이 될 수 없는 완전한 일치 속에 이미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거기에는 속임이나 경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러면 손해 보는 거 아냐?’라는 의문도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내어줌으로써 서로의 영광이 드러나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에 우리를 초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자비로우신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은 살리기 위한 심판입니다. 빛이 비춰올 때 빛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그 빛으로 말미암아 더 큰 빛을 낼 것이지만, 어둠에 있는 사람은 그 빛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사랑으로, 자비로 오신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행실로 말미암아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보여주고 서로의 모습이 되어주듯이, 우리는 이제 예수의 영광을 받고, 예수의 모습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도 예수께서는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나를 통해 일하고자 하십니다. |
다해 사순 제 4 주간 수요일/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 조성호 신부님
2007. 3. 21. 오전 9: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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