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 - 이회진 신부님 /2007.03.16

2007. 3. 17. 오전 9:09:20

글자
“어떤 수녀님이 있었습니다.
아주 열성적으로 일하고 장상에게 순명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때로 장상이 자신의 상황이나 새로운 곳의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명령을 내리면 “내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수녀님이죠.

어느 해는 유치원 사도직을 맞게 되었는데,
이 공동체는 다른 사도직을 분도 같이 생활하고 있어서 공동체는 늘 바빴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들 바쁘고 힘든 것은 알지만 2층 냉온수기에 물이 떨어지면 채워나야 하는데
다들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돌아와 물 한 모금 먹으려 하면 물이 없는 것입니다.

이 수녀님이 사는 공동체는 정수기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정수기는 옆 건물, 유치원 건물 1층 식당에 있었고,
생활하는 공간은 다른 건물 2층이었죠.

평소에 그냥 걸어 다닐 때는 가까운 거리지만
물통에 물을 채워 오기에는 귀찮은 거리였습니다.
당번이 정해진 것이 아니니 물이 떨어지면 누군가 채워놓으면 된다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무도 채워 놓는 것 같지 않습니다.

어느 날은 화가 나서 자신도 목마른 것을 꾸욱 참으며 하루 이틀을 버텨보기도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물통에 물이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러면 안 되지 하며 마음을 다져 보지만
화가 나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화가 나지만 할 수 없이 다시 물통을 들고 옆 동 1층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말하죠. ‘그래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는데 한 번 더 하자!’
그러나 그것도 반복되다보니 어느 날부터는
‘왜 나만 해야 되는 거지? 왜?’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떤 회원은 대충 어지럽히는 것은 예사로 생각하고 있고,
툭하면 힘들다며 쉬겠다고 방에서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빠 죽겠는데 어디 피정 가겠다며 쏙 빠져 나가면 정말 미워 죽겠는 심정이 됩니다.
정작 쉼과 피정이 필요한 것은 자신인데 말이죠.

그런 그 수녀님에게 제가 그랬습니다. ‘수녀님도 어디 가서 피정하고 오세요.’
그랬더니 수녀님이 놀라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신부님, 수도원이 이렇게 바쁜데 어떻게 제가 빠져 나갑니까?’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는 ‘사랑’으로 묵상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르 12,29-31 참조)는
오늘 복음 말씀처럼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생각하면 할수록 사랑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하느님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고, 기도를 해도 들어주시는 것 같지 않는데,
마음은 왜 이리 바쁘고 고단한지 정신이 없습니다.

이웃은 또 어떻습니까?
이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주고 애를 써 봐도 도대체 돌아오는 게 없고 지치기만 합니다.
그래서 돌아보면 모두 원수 같고, 원수가 아니더라도 사랑하기에는 힘들기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랑이었듯, 우리의 사랑도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며 당신의 일을 다 하시며 기쁨으로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을 살며 우리의 일을 하게 되면,
이 사랑이 아픈 고통과 죽음만이 아닌 참된 기쁨과 행복으로 변해가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순절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며,
다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삶의 균형을 찾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사랑을 하고 하고 또 하라고 강요받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만큼 사랑을 살고 있고, 얼마만큼 사랑에 지쳐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며 예수님처럼 다시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기쁜 생활과 행복한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
예수님처럼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주님, 당신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다시 일어나는 하루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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