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입니다.
복음 : 마태오 18, 21-35
용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내의지 표현
용서라는 것은 만나기 귀찮다고 피하고, 회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무관심도 용서는 아닙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무관심도 필요할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잘못을 모르는척 하거나, 무조건 참아 주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악에도 굴하지 않고, 나쁜것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선으로서 악을 이겨야 하는 자세가 바로 용서입니다.
즉 용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내 의지의 표현입니다.
용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신과도 큰싸움을 해야 하고, 도저히 용서를 못하는 인간적인 마음과도 큰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싸움에서 이기면 용서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싸움에서 진다면 용서하기가 힘들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결코 이 용서라는 것은, 인간적인 나를 이기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것, 이것이 바로 용서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용서라는 것이 힘든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나라는 모습을 우선시 하기 때문에, 먼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용서가 굉장히 힘든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다른이들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면서, 내 자신은 하느님께 용서 받기를 원한다는것, 정말 잘못된 신앙의 자세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면서 이웃들과 마음으로부터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 이것이 먼저 깔려 있을때, 우리 역시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도저히 용서 할 수가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들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우선 그를 위해서 기도로서 먼저 용서의 시작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리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표현, 그것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이웃을 얼마만큼 마음속 깊이 용서하면서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 하느님을 얼마큼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를 보여 줄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진정으로 용서하는 마음, 바로 그안에 평화와 기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다른 이웃들에게 잘못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좀더 쉽게 용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안에서 당신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고, 또한 그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또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신앙안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다르게 다른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내자신을 의지적으로 희생할줄 아는 그런 모습도 필요하고, 또한 무엇인가 틀리게 다른이들보다 쉽게 용서 할 수 있는 관용도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형제를 용서한다는것, 우리가 이세상을 마치고 주님께 갈 그날까지 쉴새없이 이루어져야 되는 우리의 표현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용서의 뜻을 새기면서 이미사를 봉헌합시다.
-인천교구 박촌동 성당 윤자면 신부님 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