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해 사순 제 3 주간 월요일 2007. 3. 12. 토평동.
2열왕 5, 1-15ㄷ. 루카 4, 24ㄴ-30.
지난 토요일에 TV로 배구를 봤습니다. 아마추어인 한국전력과 프로 최강이라 할 수 있는 현대캐피탈의 경기였습니다. 한국전력이 현대를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누구도 이 경기의 현대 승리를 의심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이겼습니다. 이기려고 하는 자신감과 경직되지 않은 유연함이 그 승리를 이끈 것입니다. 반면 현대는 다음 경기를 생각하는 것 때문에, 이겨야 한다는 것 때문에, 어딘가 모르게 경직되어 있었고 결국 졌습니다. 저는 배구 경기를 보면서 그렇게 전율을 느끼고 눈시울을 글썽이며 보기는 처음입니다. 한편의 감동의 드라마였던 것이죠.
정말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시종일관 몸을 던지며 공을 쫓아가는 선수들, 그들의 몸은 자유로웠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자유로움, 경직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승리를 이끄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실력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늘 관계 속에 살아가기에 그 안에서 자신감과 자유로움을 가진다면 훨씬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움입니다.
저는 병자를 방문하거나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해 줄 때 사제에게 주어진 예식서보다 자유로이 기도할 때 스스로 은총이 충만함을 느낍니다. 매어진 예식서에 경직된 제가 아니라 주님께 나를 내어맡긴 자유로움이 기도하는 나부터 은혜롭게 하고, 그 기도가 기도를 받을 이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 자유로움으로 회당에서 다른 이와는 다른 설교를 했고,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런 일치라면 주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내 경직된 자신들의 틀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역사하심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을 보고 있다면 그것이 전부인 것을…. 예수께서 요셉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가능성을 실현시키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의 권능을 향유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테두리, 기존의 굴레 안에서 참된 행복을 얻지 못하던 이들, 그러나 결국 그런 사회 속에서 저도 모르게 굳어져 가나 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종교적 구조가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누구에게서도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엘리야, 엘리사, 그리고 예수님. 하늘의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능력을 지닌 분들이지만, 닫아둔 마음 앞에선 기적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없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게 엘리야가 없어서, 내게 엘리사가 없어서, 혹은 예수님이 계시지 않아서 변화가 없습니까?
나에게 더 위대한 분이 나타나지 않아서 변화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좀더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종교적 틀에 경직되지 말고, 좀더 자유롭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행함을 따라야 합니다. 믿음이 좋다, 믿음이 깊다는 것은 날개짓을 하지 않는 통닭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날개를 가지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날개짓하는 나를 수고롭게 하면서도 바람에 나를 맡겨 자유롭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
다해 사순 제 3 주간 월요일/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 조성호 신부님
2007. 3. 15. 오전 11:13:06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