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 마태 18, 21-35 오늘 복음에서는 용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함께 무자비한 종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말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를 통해 주님의 구원과 자비를 더욱 깊이 깨쳐가는 이 사순절에 서로의 부족함과 허물을 용서함으로써 주님의 자비와 구원을 체험하는 복된 사순절의 삶을 살기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다 볼 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없었다면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허물 투성이 이고 잘못 투성이인 존재로서 그 분의 자비와 사랑에 매일 감사밖에 드릴 일이 없음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하느님께 빚진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빚 문서를 무효화 시켜 주셨습니다.
빚진 자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느낌과 기분으로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일을 해도 재미가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벌어서 빚 갚는 일에 다 바치니 힘이 빠지고 맥이 빠집니다. 이런 빚에 짓눌린 사람에게 빚을 탕감해주고 없애준다는 것은 바로 구원이고 해방인 것입니다. 우리가 겪은 IMF 경제위기는 바로 외국의 빚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경제위기를 맞아 많은 단기외채를 중·장기외채로 전환함으로써 우리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빚을 탕감 받은 것이 아니라 잠시 갚을 날짜를 연기해주는 유예임에도 불구하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빚을 탕감해 주는 일은 큰짐에 짓눌린 자에게 허리를 펴게 하는 기쁨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우리의 잘못을 조건 없이 탕감해 주시며 매순간 우리에게 잃었던 삶의 기쁨을 돌려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웃의 잘못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고도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의 빚을 끝까지 받아 내려는 인색함을 보이는 무자비한 종의 모습임을 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용서할 일 보다는 용서받을 일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무는 용서의 의무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무조건 용서하셨고, 주님의 그 용서와 비교하면 나 자신의 억울함은 아무 것도 아니기에 내편에서는 용서의 의무만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의 자비를 생각할 때 용서 못할 일, 못 참을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용서는 항상 조건적이고 제한적이며 그래서 잘못의 횟수를 따지고 잘못의 종류를 따집니다.
사실 우리에게 죽을죄를 지었을 정도로 잘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좀 상하게 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작은 이웃의 잘못 앞에서도 우리는 앙심을 가지고 복수하려 하며 못 참겠다고 흥분하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임을 봅니다.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들이겠습니까? 사실 이웃의 잘못에 대한 의무의 부과는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내 편에서는 그저 용서하고 새 삶을 살 결심을 하는 일만이 중요합니다. 용서를 통한 상처의 치유 없이는 어떤 새 삶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사순절에 참된 용서의 실천과 노력들을 통해 주님의 자비와 구원을 체험하는 복된 신앙의 삶일 수 있도록 기도하며 용서와 자비를 실천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