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 3주간 화 마태오 15, 21-35- 죄,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 이찬홍 신부님

2007. 3. 15. 오전 11:02:30

글자
다해 사순 3주간 화 마태오 15, 21-35- 죄,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오늘 복음 말씀은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용서를 하게끔 하는 잘못, 곧 죄에 대해 나눠볼까 합니다.
우리는 사랑, 용서, 행복에 대한 말을 듣기 좋아하며 자주하지만, 죄나 잘못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고 잘 하지도 않습니다.
‘죄’라는 말은 자유롭고 기쁘게 살아가려는 우리를 억압하는 족쇄처럼 느껴져 가급적이면 덜 이야기 할 주제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죄에 대해 언급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하느님을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라, 정의와 심판의 하느님으로만 여기게 하는 부정적인 것일까요?

만약, 죄인이라면.. 곧 죄를 지어도 아무런 꺼리김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다면, 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만약, 죄인인 상태로 하느님 앞에 숨어있게 된 존재라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 스스로 하느님을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 아니라, 정의와 심판의 하느님으로만 여기되 되어 버립니다.

하느님이 진정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으로 느끼고, 온 마음으로 고백하기 위해서는, 죄가 무엇이고, 그 죄가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과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고, 그 깨달은 것을 하느님께 내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여기서 죄를 대죄니, 소죄니, 중죄니... 구분하지는 않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죄는 관계의 단절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하느님이요,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관계를 단절시켜버리는 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독서에서 알려주듯이,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갑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면, 이런 축복을 늘 체험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죄는 이러한 관계를 파괴해버리고, 망각하게 하여 가장 작은 민족으로.. 온 세상에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게 해 버리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곧, 신앙생활 안에서 내적인 평화, 만족, 기쁨을 빼앗아가 버리고, 불안, 분노, 우울, 자기폐쇄 등의 감정으로 살아가게 되어 결국, 자신도 죽이고 남도 죽이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자신 또한 상대방을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늘 죄를 짓는 악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제발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라고 청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숨 쉬고 영양분을 받으며 살아가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죄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는 것입니다.
삶 안에서 죄를 피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노력하는 것입니다.

혹,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그 죄가 대죄이든, 소죄이든, 하느님께 나아가 겸손되이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청하는 것입니다.
다시금 힘차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매번 죄를 짓는 모습이, 사람이 지닌 한계나, 본능처럼 느껴져... 나약한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체험되는 것이라 생각해 버리고 싶지만... 그리하여 아주 거리낌 없이... 별 죄의식 없이 생활해 버리고 싶지만, 그러한 생각은 죄에 대한 감각이 상실되어 버리는 모습이기에...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이기에 늘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럼, 죄 체험이... 인간이 지닌 나약함이나, 죄로 기울어지게 하는 결과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체험되는 것일까요?
자신이 그렇게 지는 죄는 죄가 아니라,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요, 본능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 심리학에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과 가르침은 사람의 모습이나 특성을 너무 동물적인 측면만 강조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람에게 위대함이 있다면 어떠한 것일까요?
사람이 지닌 위대함은 자신의 나약함이나 본성을 뛰어넘을 때, 드러나는 것일까요?
만약, 어떠한 잘못을 했을 때, 그 잘못을 합리화 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용서를 청하는 모습이 진정 위대한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한 모습이, 죄와 잘못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에 자신의 모든 감각을 세우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진정, 자신의 나약하고 그릇된 본성을 뛰어넘는 위대한 모습이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사람의 위대함은 죄를 짓지 않는 모습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겸손되이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모습에 있음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죄가 아무리 우리를 하느님과 떼어놓으려 한다 하더라도,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를 단절시키려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내적인 평화와 행복, 감사하는 마음을 없애 버리는 독이라 하더라도... 그런 죄 역시 하느님의 손안에 있음을 잊지 맙시다.
하느님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나, 하느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과 섭리 안에 있음을 잊지 말고, 하느님과 함께 하며 죄를 멀리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우리의 믿음은... 죄가 아무리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고, 그분과의 사랑의 관계를 파괴시키고, 실제 그렇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끝내 실패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지혜로만 죄를 피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에 의해서 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죄를 멀리하려 하기에,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죄와 그 영향은 끝내 극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고백이요, 겸손한 마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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