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 제 3 주일
2007. 3. 11.
토평동.
탈출 3, 1-8ac.13-15.
1코린 10, 1-6.10-12.
루카 13, 1-9.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에 대해서 말하기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러쿵 저러쿵 대화합니다.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이야기-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였다는 이야기-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져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는 이야기-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전했고, 예수와 함께 있던 이들도 그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생각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께서도 이런 전갈에 당신의 뜻을 이야기했으니 당신도 그 사건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떤 일을 바라볼 때 그 초점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지 말고 자신을 향해 있으라고 하십니다. 특히 죽음 질병을 죄와 연관시키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알고 계셨기에 사고를 당한 이들의 죄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죠.
빌라도에 의해 죽은 사람들은 로마에 정치적으로 맞서다가 죽은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실로암 탑에 깔려 죽은 사람들은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도 사고를 당해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빌라도에 의해 죽은 사건을 두고 그 위에 실로암 탑에 깔려 죽은 이들을 언급하심으로써 나의 탓이든, 나의 탓이 아니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내 삶은 죽음이란 이름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심판 받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나이니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표징을 발견하며 지금 나의 삶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느님께 변을 당한다는 것이죠. 물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간 이는 구원을 받습니다. 회개하고 그분의 뜻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회개란 이전의 삶을 지우고 새롭게 사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당신께서 먼저 잊으시니 우리도 이전에 매이지 말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비유의 천재 예수께서는 하나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습니다. 쌩뚱맞게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냐 하겠지만, 당시에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죠. 그리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주인이 하는 일인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때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으니까 말이죠.
글의 문맥상 주인은 그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열매를 맺을 무렵부터 3년째, 즉 계속해서 주시했다는 것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 나무의 열매를 기다렸는데, 그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포도재배인을 나무라지 않는 것은 누구도 소홀함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것이죠. 3년이란 시간은 단순히 3년이란 기간이 아니라 그 숫자가 상징하는 바대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기에 쓸모없는 나무입니다. 아예 신은 후 지금까지 열매를 맺지 않았기에 불임의 나무였다는 것이죠. 그것은 의미없는 나무입니다. 그런 나무는 찍어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그때 포도재배인은 그 나무와 자신에게 일 년이란 기간을 말미로 주기를 청합니다. 불임의 나무이지만, 다시 정성을 들여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락됩니다. 이제 주인에게도, 재배인에게도, 그리고 그 나무에게도 지난 3년은 없습니다. 그 3년을 생각했다면 이것은 무모한 도전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계약 관계에서는 지난 3년은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진 것이고, 이제 오늘이 중요합니다. 1년이 중요합니다. 1년이란 시간은 3년에 비해서 한정된 시간입니다. 짧다는 것이죠. 얼마나 삶을 살아가면서 긴박성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지금 내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동안 삶이 예수를 배척하거나, 예수를 모르거나, 예수의 뜻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거나….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지금 재배인의 마음, 예수의 마음을 알았다면 내 삶을 올인하는 것입니다. 포도재배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듯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걸고 이 무화과나무를 살리겠다 대들었습니다. 지난 3년, 처음부터 아무런 결실이 없었던 대상을 두고 기필코 해보겠다고 달려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혼자만의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즉 포도재배인만의 것, 예수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거름을 먹어야 하고, 우리는 그 분의 삶을 먹으면서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결과는 명확합니다. “열매를 맺지 않으면 잘라버리십시오.”(루카 13, 9) 포도재배인은, 그리고 예수님은 그럴 정도의 비장한 각오로 달려든 것이지만, 그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심판, 멸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 13, 5)
지난 삶이 아니라 오늘이 중요합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 나를 위해 올인하시는 그분을 믿고 나의 삶을 그분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분 사랑 안에서 열매를 맺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투신해야 합니다. 지난 삶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이었다고 실망 내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예수와 함께라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매를 맺겠지요.”(루카 13, 9) 그분은 나를 보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십니다.
예.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을 믿는다면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