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13.화
| 마태오 복음 18장 21-35절 | ||
|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 ||
|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 허찬란 신부 | ||
| 누구나 자신의 이웃에게 사랑을 받으며 산다면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누가 나를 위해 희생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바로 그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해야 맞을까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해야 맞을까요? 둘 다 맞을 것입니다. 우리쪽에서만 하느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이 우리를 믿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늘 우리와 함께 계셔주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이십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신앙이자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답하며 사는 것이 기도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요? 찬양성가에 나오듯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하신 하느님 창조사업의 최고 작품입니다. 이 안에 우리 고유의 인격과 본성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매정한 종은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도 알았고 많은 빚을 탕감 받는 체험도 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왜 하느님의 사랑을 망각한 채로 경거망동 했을까요? | ||
| 알속의 병아리 | ||
| 병아리는 어떻게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일까? 병아리가 직접 알을 깨고 나올까 아니면 어미 닭이 알을 깨주는 것일까? 알 속에 있는 병아리의 부리는 죽순보다도 더 연약한데, 두꺼운 벽 같은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미 닭이 깨주어야 하는데, 깨야 하는 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너무 일찍 깨주면 조산아가 된다. 닭들은 인큐베이터가 없으므로 조산아는 죽는다. 만일 너무 늦게 깨주면, 알 속에서 병아리가 죽어버린다. 해답은 이렇다. 알 속의 병아리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 어미 닭이 알을 깨준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가 되면, 죽순 같은 부리로 알을 쪼아댄다. 연약한 부리로 쪼아대므로 그 소리는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아주 여린 소리이다. 그렇지만 어미 닭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가 병아리가 껍질을 쪼아대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그 순간에 알을 깨준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바로 이런 관계이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다. 우리 곁에, 우리 가운데, 우리의 삶 속에 함께 계시는 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알 속에 갇힌 병아리처럼 살고 있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모르고 주님을 의심하며, ‘내가 이렇게 어려운데 왜 외면하시느냐’고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는다. 종종 우리는 알 속의 병아리처럼 욕심과 이기심의 벽 속에 갇혀 산다. 이 벽을 우리의 연약한 힘으로 깨기는 어렵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에 따라 행동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중섭 | 가톨릭신문사 | <광야의 여정>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