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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모세는 파라오의 왕궁에서 ‘나로다’ 하고 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나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40년 동안 가슴속에 묻어두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깨진 자기 모습의 파편들이 튀어올라와 견디지 못해 호렙산 노을 끝자락까지 미친 사람처럼 기어올랐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두렵고 빨려드는(tremendum et fascinans) 강렬한 체험 가운데 소명을 받습니다. 네가 도망쳐 나온 에집트로 가서 아우성치는 내 백성을 데려 오너라. 하느님의 이 파견 명령은 미디안의 목동이 된 이후 40년 동안 모세의 마음 깊은 곳 그 어딘가로부터 늘 일렁이고 있던 내용이었습니다. 눈에 낀 백내장 때문에 떨기불인지 불떨긴지 하여튼 그 속에서 거룩한 분의 음성을 듣고는 다리가 후들거려 가죽표 샌들마저 벗겨졌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전능하신 분’(엘샬다이) 이라 칭했던 바로 그 하느님이다. 그렇다면 명함 한 장 주시겠습니까? <야훼> : ‘나는 나다.’ ‘나는 있다라고 하는 그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겠다.
아마도 모세는 하느님 이름의 의미를 깨닫는데 평생이 걸렸을 것이다. 이것은 이름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언어로 규정되는 분이 아니심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명명일 따름입니다.
모세는 비로소 지난 40년의 쓰라린 세월이 자신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었는지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교만은 바닥의 세월 40년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겸허한 인간으로 서게 된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룩한 그분 앞에 나는 속된 인간일 뿐. 하여 모세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나는 나다 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바로 그런 분으로 고백됩니다.
그리고 이 고백의 배경에는 하느님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자기발로 스스로 서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오직 그 분의 자비와 용서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깊은 깨달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2007.03.11 /야훼 하느님 - 배기현 신부님
2007. 3. 12. 오전 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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