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금요일2007.3.9.(창세 37,3-4.12-13.17-28/ 마태 21,33-43.45-46)
오늘 독서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바보 온달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원래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나무를 해다 팔거나 구걸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늘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평강공주는 바보 온달에게 글을 가르치고 무예를 훈련시켜 그를 유명한 장군으로 만들었습니다. 갑남을녀들의 사고와 평강공주의 사고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두 눈을 가지고 똑똑히 본다고 하지만 객관적이지 못할 경우도 허다합니다. 객관적이라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더 자기 주관적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100분토론 시간에 한 국회의원이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한 학교들을 조사해보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분이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주먹으로 때린 사람보고 물으면 때린 사람은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대답하겠지만, 맞은 사람 입장은 다릅니다. 때린 사람이 아무리 아프지 않다고 해도, 맞은 사람은 아픕니다.”
사회에 전반적으로 확산 된 객관적이지 못한 사고들은 언제나 사회 정의를 파괴하게 되고 그 결과는 그 누군가를 십자가에 매달게 됩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요셉도 형들에 의해 죽음의 길에 내몰렸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한 요셉에게 쏠릴 유산이나 권한 때문에 요셉의 형들은 아우를 죽음의 길로 내몰고 있습니다. 형들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형제지간에 있어야 할 정의마저도 저버립니다. 복음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과 소작인 사이에 벌어진 이 비유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과 소작인 사이에도 정의가 있게 마련인데 소작인들의 과욕은 그 정의를 저버립니다. 이 장면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상을 그대로 담론으로 담아주고 있는 듯합니다. 정의가 깨어지는 곳에는 언제나 유혈이 낭자하게 마련입니다. 법을 만들어 강제로 사회 정의를 이루어보려 해도 인간들은 요리저리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갑니다.
우린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기 위해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임하라고 기도를 바치는 우리의 모습을 하느님의 눈에 비추어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를 희망하면서 사회 정의를 저버린다면 우린 요셉의 형들이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바로 그들과 다를 바가 조금도 없게 됩니다. “정정당당하게 살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정정당당하게 사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의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남을 판단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정의를 철저히 실천하야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됨은 정의를 거역함으로써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이 아니라, 정의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순 제2주간 금요일2007.3.9/정정당당하게 살아라! - 하성호 신부님
2007. 3. 12. 오전 7: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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