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 루가 15, 1-3. 11-32 부산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루가 복음에 나오는 많은 비유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비유 한가지를 들었습니다. 작은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돌아온 탕자의 비유라고 할 수 있고, 반면 감히 하느님의 위치에서 보면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오늘 저는 평화방송 청취자 여러분과 함께 그 두 가지 측면 중에서 잘못을 범하고, 실수를 하는 나에게서부터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떤 아버지길래 우리가 회개를 해야만 하는지를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광주 신학교 시절에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를 안고 급히 병원으로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돌이 좀 지난 아이 같았는데 젓가락 같은 뾰족한 것에 찔렸는지 혀를 크게 다쳤고,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아버지인듯한 남자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엄마가 아이를 소홀히 돌보았기 때문이라고 계속해서 아내에게 화를 내고 있었고, 아이 엄마는 그저 울고만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화를 낼 줄 몰라서 남펀의 분노를 듣고만 있었겠습니까? 큰 상처를 입은 아이를 앞에 두고 화부터 내는 남편이 밉고 야속해서라도 같이 음성을 높이며 화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어머니의 관심은 오로지 아이에게만 가 있었고, 남편이 화를 내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너무나 아파서 울고만 있는 아이 곁에서 손까지 바르르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고, 간간이 "조금만 있어, 애야. 아프지 않게 해 줄께"하며 울먹일 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온 마음으로 아이와 고통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사랑으로, 마음을 다해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아파서 울부짖는 아이 곁에서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는 그 심정을 어린 아이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안타까운 마음에 울먹이면서 간간이 했던 말들을 아이가 알아 듣기나 하겠습니까? 비록 애가 엄마의 심정과 말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의 그 모자의 하나된 모습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겠다는 느낌을 저는 강하게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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