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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 2 주간 토요일 2007. 3. 10. 토평동.
미카 7, 14-15.18-20. 루카 15, 1-3.11-32.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 그렇기에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 그러나 그렇게 살기 힘든 이야기.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복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갑시다. 누가 떠오릅니까?
작은 아들? 큰 아들? 아버지? 바리사이? 율법학자? 세리? 죄인?
아닙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자꾸만 제 3 자를 떠올리고, 그 후에 나를 그 모습에 맞추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늘 복음은 아주 중요합니다.
다시 시작합시다. 누가 떠오릅니까? 도대체 누구입니까?
아버지? 어머니? 누나? 언니? 형? 친구? 성당의 형제? 자매? 얄미운 신부? 얄미운 수녀? 자비로운 신부? 자비로운 수녀?
아닙니다. 아닙니다. 다시... 다시... 나입니다.
내 것을 고집했던 삶.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갔던 삶. 흥청망청 마구 뿌리며 방탕하게 살았던 삶. 왜 나에겐 그런 삶을 주지 않느냐고 불평하던 삶. 세상의 불평 속에 나를 묻어 두고 나도 역시 불평하던 삶.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명령이라 여기고 끌려가던 삶. 삶이 고달파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삶. 속는 일이 많아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던 삶.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며 세상을 탓하고 미워하던 삶. 아프고 슬픈 일이 너무도 많아 희망 없이 울먹이던 삶. 사람들의 멸시 조롱 때문에 비관하거나 나 역시 그 멸시 조롱에 한 몫 하던 삶.
이 모든 것들을 다 끄집어 낸 후에야, 그리고 다 잃은 후에야 우리는 이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잃었던 아들. 하느님 아버지가 나를 잃고, 함께 하는 가족, 친구, 형제 자매들마저 잃고, 나도 나를 잃었을 때, 그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몇 번을 다짐하고서도, 그토록 많은 사순 시기를 보내고서 회개했다고 하면서도 다시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보십시오. 아직 우리는 잃지 않은 것입니다. 돼지와 함께 사는 것처럼 자신을 모두 버린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돼지.. 이 말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는다구요? 유다인들에게 돼지는 부정입니다. 그 돼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 돼지들이나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으려 했다니... 유다인들에게 그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삶입니다.) 그렇게 다 버리고 내가 없을 때에야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루카 15, 32)
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 기쁜 날. 이 기쁜 날은 자신을 다 버리고 주님께 돌아온 후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즐기려고 준비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신데,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
다해 사순 제 2 주간 토요일/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 조성호 신부님
2007. 3. 12. 오전 7: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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