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요?
2007년도 사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회개와 참회의 생활로 부활의 기쁨을 노래할 그날을 준비하기 위한 은총의 시기가 열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해마다 사순 시기가 되면 새 출발을 결심하면서 남다른 각오와 다짐으로 담배나 술도 끊고, 그동안의 악습도 고쳐보고자 자신은 물론 많은 이웃들과도 새끼손가락을 걸어보지만, 40일이 지난 후 성찰해 보면 언제나 그랬듯이 변화되지 못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유혹. 그렇습니다. 바로 유혹이 우리를 따라다니며 발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세상 창조 때부터 항상 인류와 함께 하며 인류를 괴롭힌 ‘최대의 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간직한 아담과 하와는 물론이거니와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수많은 인물들까지도 유혹에 농락당하고 고뇌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이끌어 갔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후에도 인류는 유혹과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고, 그때마다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유혹을 이겨내면 하늘에 공로를 쌓고 영신적인 이득을 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죄’라는 멍에를 짊어지면서 희생과 극기, 보속 등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유혹의 손길은 하느님의 아들일지라도 결코 두려워함 없이 찾아갔는데, 그것은 40일이라는 엄청난 기간의 추위와 배고픔, 수많은 역경의 끝자락에서 아주 교묘한 수법으로 너무도 달콤하게 인간의 가장 원천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세 가지 유혹’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나하나 순서대로 이겨내기도 힘든데 연속적으로, 게다가 하나의 달콤함조차도 참지 못하고 넘어지기 쉬운데 가장 강력한 유혹 셋이 예수님께 다가온 것입니다. 결국 악마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떠나가 버리면서 결론이 나긴 했지만, 예수님의 탁월한 지혜와 강인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어찌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위험천만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도, 각오를 하고 무엇인가를 해보려 하면 유혹은 더 가깝게 찾아옵니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도 많지만,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그리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길 결심해 봅니다. 그러다 쓰러졌다 일어서고 다시 넘어졌다 우뚝 서면서 점점 주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유혹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더해주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게 도와주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에 일정부분 필요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적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지혜와 믿음을 통해 유혹에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유혹을 이겨낸다면 40일이 지난 후 더욱 가슴 벅찬 기쁨으로 부활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디 성공하시길….
- 수원교구 노성호(요한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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