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
고려를 뒤엎고 이씨 조선을 창건하려는 야심을 품은 이방원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려고 시조 한 수를 지어 들려 줍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칡넝쿨처럼 우리도 서로 얽혀서 옛 왕조, 새 왕조 따지지 말고 오래 오래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넌지시 권유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정몽주 역시 시조를 지어 변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이렇게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굳게 지켰던 정몽주는 결국 이방원의 심복에 의해 살해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회유와 유혹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본격적으로 선포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간 준비를 하시는데, 바로 이때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우선 악마는 예수께 돌을 빵으로 바꿔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빵으로 대표되는 돈과 재물에 의존해서 백성의 마음을 잡으라는 유혹입니다. 이어서 악마는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세상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세속 권력과 영화로 백성을 휘어잡으라는 유혹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악마는 성서의 말씀까지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하느님이 천사를 시켜 지켜 주신다고 했으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내세워 자기를 과시함으로써 백성의 주목을 끌라는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치시는데, 성서에 기록된 하느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돈과 재물을 앞세우려는 유혹에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신명 8,3)는 말씀으로, 세속 권력과 영화에 기대려는 유혹에는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 6,13)는 말씀으로, 하느님을 자기 과시의 도구로 삼으려는 유혹에는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마라”(신명 6,16)는 말씀으로 대처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악마의 집요한 유혹을 이겨 내신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성사로 시작된 신앙의 여정에서 하느님보다는 재물과 권력에 의지하려는 유혹, 자기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는 하느님까지도 이용하려는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충신이 두 주인을 섬기지 않듯이 충실한 신앙인 역시 두 주인을 섬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제1독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바로 그분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제2독서).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일편단심으로 하느님께 굳은 신뢰를 갖고 그분 말씀에 의지할 때, 교묘하고 끈질긴 유혹의 목소리를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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