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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 예식 다음 토요일 복음 : 루카 5, 27 - 32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루카는 여기서 레위를 세리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세리라고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제자는 바로 마태오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들 마르코, 마르코 복음서를 찾아보면 마태오라는 세리가 있었다고 전하거나 세리인 알페오의 아들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나오는 레위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마태오이고 또한 마태오 복음의 저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후에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되는 레위는 세리였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레위는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게다가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르는 것을 기념하며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잔치를 베풀었으니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레위의 잔치에 참여했을까요? 레위가 세리였으니 당연히 레위의 동료인 세리들과 그 밖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초대받았고 축하해주러 왔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중심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레위가 베푼 잔치는 예수님께 감사하는 잔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잔치의 중심이 되는 자리에 앉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과 레위, 그리고 레위의 친구들인 세리들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어째서 레위의 친구들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죄인으로 불리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리들은 세금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세청 직원 같은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로마의 총독에 의해 통치를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로마에 세금을 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금을 걷는 사람이 바로 로마로부터 급여를 받으면서 일하는 세리들이었습니다. 예전 세무 공무원들의 비리가 큰 이슈가 되었던 것처럼, 그 당시의 세리들 중 일부는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둬서 자신의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캐오가 예수님께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세금은 오직 하느님께만 바치는 것이지 사람에게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언젠가는 로마의 통치를 벗어나기를 강렬하게 소망하였고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도 강력한 힘으로 로마를 유대 땅에서 몰아내는 정치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이렇게 로마와 로마에 바치는 세금을 싫어하던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는 세리는 과연 어떻게 여겨졌을까요? 우리식으로 하면 일제 식민 시대의 매국노나 일본 앞잡이 같은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리는 유대민족의 죄인이었고 하느님 앞에서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런 죄인인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어울리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모든 것, 자신이 지금까지 모아 왔던 모든 재물을 버린 레위와 그런 레위를 축하해주러 잔치에 모인 레위의 동료 세리들은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께 왔을까요? 그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루카 복음 18장 9절부터 14절에 나오는 바리사이와 비교되는 세리처럼, 자신의 가슴을 치며 성전 한 쪽 구석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의 사람으로 알려진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기라도 하면 예수님의 영향으로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예수님께 모여들었고 레위는 아애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병을 아는 사람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와서 자신의 죄를 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병을 모르는 사람들 즉,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다가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건강한 이들’은 정말 건강한 사람이 아닌 건강한 척하는, 건강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여러분들의 영혼은 건강하십니까? 아니면 의사가 필요하십니까? 오늘 우리 자신의 영혼의 건강은 어떤지 진단해보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제의 예식 다음 토요일 /여러분들의 영혼은 건강하십니까? - 김윤복 신부님
2007. 2. 24. 오전 11: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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