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4.토/용서하는 마음 - 이정호 신부님

2007. 2. 24. 오전 11:00:42

글자

2007.2.24.토

 

루카 복음 5장 27-32절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다.”
 용서하는 마음     이정호신부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초등학생 시절에 가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단지 방학숙제를 제대로 마치지 못해서 선생님 얼굴 뵙기가 두려워 개학하는 날
아침에 덜컥 가출을 했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부모님께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쪽지를 두고 나왔으니 가족들이 얼마나 놀라고
걱정했겠습니까. 혹시 친척집으로 갔나 싶어 아버지는 서울 반대쪽에 있는
큰집에 들러 제 소식이 있었나 물어보시고 이곳저곳 찾아다니셨답니다.
가출을 했지만 갈 곳이 없어서 전 결국 해질 무렵 몰래 집에 들어와 새우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가출소년 찾기에 지친 부모님들이 돌아와 저를 발견하고선 기가 차서 흔들어 깨우며
하시던 말씀이 “저녁밥 먹어라”였습니다. 종일 찾다 지쳐 화도 나고 당황한 마음에 큰소리라도
나올 법한데 저에게 아무 말씀 하지 않고
사랑으로 용서해주신 부모님의 기억이 잘못한 벌로 회초리를 맞은 것보다
더 크고 깊게 남아 있습니다. 때리고 야단쳐서 잘못을 바로잡는 길도 있지만
따뜻하게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그 마음을 서로가 알아준다면 그 어떤 훈계보다 더 큰 교훈이 됩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아마 그러하실 겁니다. 밥 먹어라 하고
부르셨던 부모님의 목소리에서 지금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용서하는 마음
어느 해 가을,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 체육대회가 열렸다.
다른 때와는 달리 20년 이상 된 수인들은 물론 모범수의 가족까지 초청된 특별행사였다. 체육대회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다.
"본인은 아무쪼록 오늘 이 행사사 아무 탈없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가족들과 격리됐던 재소자들에게도, 무덤보다 더 깊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아온 가족들에게도 그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지난 며칠간 예선을 치른 구기 종목의 결승전을 시작으로 각 취업장별 각축전과 열띤 응원전이 벌어졌다. 달리기를 할 때도 어찌나 열심인지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했다. "잘한다. 내 아들! 이겨라! 이겨라!" "여보, 힘내요! 힘내!"
이날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부모님을 등에 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효도관광 달리기 대회였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하나 둘 출발선상에 모이면서 한껏 고조됐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선수들이 그 쓸쓸한 등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고, 마침내 풀발 신호가 떨어졌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들의 눈물을 훔쳐주느라 당신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의 축 처진 등이 안쓰러워 차마 업히지 못하는 아버지…. 교도소 운동장은 이내 울음바다로 변해버렸다.
이날 달리기 대회는 서로가 골인 지점에 조금이라도 늦게 도달하려고 애쓰는 듯한 이상한 경주였다. 그들이 원한 건 1등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함께 있는 시간을 단 1초라도 연장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연용호 엮음| 김&절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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