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과 혼인 잔치 - 이회진 신부님 2007.02.23

2007. 2. 23. 오후 10:31:13

글자
어떤 자매가 사순 시기 동안 열심히 단식을 하다가 보니
자기 몸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본당 신부님께 말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하느님께서 분명 뚱뚱한 제 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어떤 일을 하신 것이겠죠?”

신부님이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그런 것은 단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단식과 관심은 살 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식의 본래 의미는
오늘 우리가 읽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통해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첫 번째 관심이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마음이 당신께 돌아서는 것이기에,
단식을 하는 이유 역시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 지를 보게 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마음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향하도록 움직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단식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도 역시 몇 가지 점에서 “단식”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단식은 사람들에게 살과의 전쟁이라는 표제 아래
건강한 몸과 마음이라는 자기만족 혹은 자기완성을 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신앙 안에서 단식이 갖는 하느님의 얼굴을 찾고 마음을 찾는다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또한 신앙인이 자주 오해하는 것 중 하나로
단식이 고통을 수반하는 기쁨이자 봉헌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흔히 신자들은 단식이 자신이 단식이라는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 무엇인가 봉헌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인가 선한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그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단식을 고통을 통해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단식 자체가 하느님의 얼굴을 찾고 하느님의 마음을 함께 하는 기쁨이라는 것이죠.
그러기 단식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은총을 사는 것입니다.

어릴 적 세배 돈을 받거나 어른들이 과자 사 먹으라고 돈을 주면
그 돈으로 과자를 사 먹을지 아니면 돼지 저금통에 넣을 지 고민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넣게 되면 아침저녁으로 돼지 저금통을 흔들며 기뻐했습니다.
돼지 저금통이 차듯 제 마음도 기쁨으로 차는 것 같았기에
과자를 사 먹지 않는 것이 아쉬움이나 고통이 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삶의 봉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세상적인 일의 포기가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의 의미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하느님의 사랑을 함께 살아가는 기쁨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과 단식의 출발점이
고통이 아닌 기쁨이 되어야함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향해 마음을 돌리고 하느님의 마음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고통의 봉헌이 된다면 이상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한 것이겠죠.

돼지저금통을 아침저녁 흔들며 기뻐하는 아이처럼
신앙과 단식의 봉헌 자체가 기쁨이 되는 하루이길 청합니다.

“주님, 당신의 기쁨을 살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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