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9,14-15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 |
가장 흔한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귀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無에서 말씀으로 세상과 생명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과 피조물이 살아가는데 가장 귀중하고 가장 필수적인 것들일수록 나눠 쓰게 하셨고 나누기 쉽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공기, 물, 햇볕, 흙, 그리고 불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모든 피조물들은 한 순간도 살아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누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가장 흔하지만 가장 귀한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듯 나를 비우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럴 때, 나를 비우고 그 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울 수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됩니다. 하느님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단식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大속죄일에만 의무적으로 단식을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과 경견한 유다인들은 자주 단식을 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장이 서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을 했는데 그 본래의 뜻을 저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단식을 하는 본래의 뜻, 그것은 바로 보잘 것 없고 굶주리며 떠돌면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이웃을 위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것을 외면한 단식은 가장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필요없는 행위일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고 행하는 이웃 사랑의 실천은 세상에서 가장 흔하면서 동시에 가장 귀한 것이 됩니다. 오늘 하루, 나 자신이 행하는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귀한 존재가 되어 보시길 바래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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