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이(요아킴) 팔용동성당 주임신부
설날, 새해, 세수(歲首), 원단(元旦), 원일(元日), 신원(新元). 설날은 음력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의미의 새해 첫날입니다.
첫 시작. 시작이란 항상 새로움을 안겨다 줍니다. 새로움은 미지의 것에 대한 긴장과 희망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사건과 사람, 사물에 대한 희망은 우리를 들뜨게도 하지만 미지의 것에 대한 긴장은 두려움과 초조함, 조심스러움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설날을 의미하는 한문 신일(愼日-근신, 조심하는 날)이라는 단어는 이것을 잘 말해줍니다.
새로움이 가져다주는 적당한 긴장과 적절한 희망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만 지나친 긴장과 희망은 오히려 우리 삶을 힘들게도 합니다. 지나친 긴장은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사람을 소심하게 만들며, 지나친 희망은 지나친 자신감과 과잉의욕을 불러와 낭패를 보게 만듭니다. 하지만 새로움이 내포하고 있는 이 긴장과 희망은 새로움을 제대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새로움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 삶에 새로움을 덧입히는 것으로써 주어진 삶에 충실할 때 가능해집니다. 순간순간 주어진 일들(그것이 설령 아픔과 고통일지라도)에 감사하며 충실할 때 우리 삶을 새롭게 덧입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충실한 삶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한 해를 축복과 은총의 시간들로 채울 것입니다. 설날 조상들과 부모님, 친지들과 이웃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네는 것이 바로 서로에게 새로움을 덧입혀 지나간 시간들보다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충실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한해의 시작인 오늘 우리는 우리 삶에 새로움을 덧입히기 위해 복음에 나오는 충실한 종처럼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깨어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알지 못하기에 항상 허리를 동여매고 등불을 켜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인이 언제 돌아오더라도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충실함은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끊임없이 하느님 뜻을 찾으며, 부단히 하느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닌 하느님 뜻을 찾고, 내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을 이야기하고, 나 자신이 아닌 하느님을 드러내려 노력할 때 깨어 있는 충실함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우리는 오늘 또다시 하나의 점을 찍습니다. 시작이라는 새로움을, 새해 첫날 이라는 희망을. 이 점이 결코 무의미하게 끝나지 않도록, 희망과 축복이라는 하느님 은총으로 변화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삶의 충실함이, 하느님 자녀로서의 성실함이 결국 우리를 복되게 할 것입니다. 새로움을 덧입히는 끊임없는 노력 속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머물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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