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일, 설 2007.2.18./참된 그리스도인 - 이정호 신부님

2007. 2. 18. 오전 10:55:30

글자

연중 제7주일, 설  2007.2.18.

 

루카 복음 6장 27-38절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참된 그리스도인     이정호신부
어느 신부님이 밤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낭떠러지로 굴렀습니다.
다행히 떨어지는 중간에 나뭇가지를 붙들어 허공에 매달렸습니다.
어두움이 눈을 가려 바닥이 보이지도 않고 얼마나 높이 매달렸는지 알 길이 없던 신부님은
소리쳐 도움을 구했습니다. “살려주세요.” 그러자 위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을 놓아라.” 그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신부님은 놀라서
“뭐라고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느님이다”라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 목소리는 “살고 싶다면 그 손을 놓아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손을 놓으면 떨어져 죽을 것 같았던 신부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소리쳤습니다. “하느님 말고 누구 다른 사람은 없어요?”
복음을 믿고 그 길을 따라 살고 싶다지만 그 길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는 있지만 안전하게 보이는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정한 평화와 안정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음대로 사는 데에 있습니다.
설날 함께 모인 가족들 안에서 지난날의 미움을 털어버리고 용서와 화해를
이룸으로써 참다운 사랑과 구원의 기쁨을 나누도록 합시다.
 부끄러운 고백
사당역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도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드는
인파 속에 묻혀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약속 장소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저 멀리 벤치에 웬 남자가 벌렁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어제 저녁 이곳에서 잠이 든
노숙자인가보다’ 하고 슬쩍 쳐다보는데, 그냥 지나쳐가기엔 심상치 않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큰 체격을 가진 남자가 벤치에 누워 손으로 배를
움켜잡은 채 노란 액체를 토해 내고 있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지?’ 당황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함께해줄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남자는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이 남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 남자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듯 모두들 제 갈 길을 재촉할 뿐 힐끗 쳐다보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때 전철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벨이 울렸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레 그 물결을 타고 사당역을 빠져 나가려 했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지, 나는 응급처치법을 모르는데,
누군가 함께해줄 사람만 있어도,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 역시 전철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무심하게도 다음 역을 향해 부지런히 달리고 있는 전철 안에서 나는 불편함과
부끄러움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는 말씀으로
쓰러져 있던 사람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었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진정한 이웃이 되는 몫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예수님, 죄송합니다.”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한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마음 아픈 그날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은혜를 청해본다.

정은영 | 서울시 서초구 방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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