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2007년 2월 18일 /ㅣ 서공석 신부님

2007. 2. 18. 오전 10:40:07

글자

설 명절    2007년 2월 18일 


루가 12, 35-40.


오늘은 설 명절입니다. 옛날 음력을 사용할 때는 새해의 첫 날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양력을 사용하기에 과세는 1월 1일에 이미 하였습니다. 오늘은 옛날의 풍습 따라 집안의 조상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는 명절입니다.


우리는 설 명절에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리고, 가톨릭 신자들은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하며 함께 기도합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 곁을 떠나가셨지만, 그분들이 우리 삶 안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분들은 각자 많은 애환을 지니고 세상을 사셨고 우리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여러 가지 인연을 맺으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어느 날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나가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그분들이 하느님 안에 살아계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직접적인 것이든 간접적인 것이든, 그분들과 우리의 인연은 소중한 것이기에 우리는 오늘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도시에 나와 있는 자녀들이 교통대란을 겪으면서도 귀성하고,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기뻐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오늘 우리의 인연이 부모님과 조상들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행위들입니다. 그분들이 자녀들 혹은 후손들을 생각하며 보여주신 정성들을 우리도 우리 사이에 다시 살려내어 실천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라.’고 말합니다. 허리에 띠를 맨 사람은 종입니다. 등불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알게 된 선하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빛입니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빛으로 우리의 주변을 밝히라는 말씀입니다. 종은 자기를 중심으로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루어내는 중요한 일들은 모두 우리를 중심으로 우리만을 소중히 생각하고 살지 않았기에 이룬 일들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자기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쇠한 부모를 모시는 자녀가 또한 그렇습니다.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 자기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노동과 우리가 높이 평가하며 칭찬하는 모든 일은 자기 한 사람의 이기적 편안함을 생각하지 않고, 주변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이룬 것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스스로 섬기는 사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면, 제자들이 만들어낼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에 대한 사람들의 공신력이나 평가를 높이기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마르 8,11)는 바리사이들의 요구를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을 말없이 또한 생색을 내지 않고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잘 지키고 잘 바쳐서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은총을 얻어 당신이 잘 사는 길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그런 길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이 선하고 자비하신 분이라, 선함과 자비의 등불을 밝혀 보이셨습니다. 그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기까지 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를 만나면 축복하고,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고쳐 주고, 죄인을 만나면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후에 제자들은 그분에 대해 회상하면서 말합니다. “그분은 두루 다니며 좋은 일을 행하고 악마에게 짓눌린 이를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사도 10,38).


초기 교회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 것은 그분의 그런 섬김을 우리가 배워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선하고 자비하셔서 그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실천해야 하는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온 세상에 흩어져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듯이,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도 세상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각자 허리에 띠를 맨 종과 같이 복음의 등불을 밝히고 이웃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들을 생각하고,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정성을 우리의 실천으로 밝히겠다는 마음은 그분들 안에 있었던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우리 안에 다시 살려서 우리의 실천 안에도 흐르게 하겠다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흘러서 그 많은 역경을 딛고도, 부모님들은 자녀를 키웠고, 자녀들은 노쇠한 부모들을 정성껏 모시고 돌보았습니다. 또한 선생님들은 제자들을 가르쳤고, 선배들은 후배들을 사랑하고 격려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인류역사 안에 흐르고 있다는 등불을 밝힌 일들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조상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정성과 자비를 우리 마음에 되새기는 것은 선하고 자비하신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과 구별되는 별개의 일이 아닙니다. 부모님과 조상들이 실천하신 선과 자비는 하느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자각했건 하지 않았건,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우리 안에 흘러서 된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같은 실천으로 하느님이 이 세상에 살아 계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체면치례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그것은 허리에 띠를 맨 종의 모습이 아닙니다. 베풀고, 나누고, 사랑하여 주변의 모든 이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명절이 되게 합시다. 그것이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의 등불을 밝히고 주인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행복한 종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행복한 명절일 것을 빕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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