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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정해년의 첫날인 설을 기념하며 조상을 기억하고 한 해 동안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
합니다. 한 해를 늘 첫날처럼, 늘 마지막 날처럼, 그리고 유일한 날처럼 모든 것을 채우고 비우길
희망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사고능력은 몸과는 달리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뛰어넘습니다. 과거를 오늘 기억
하고 미래를 오늘 희망할 수 있으며,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자리를 넘어 지구 저편을 생각하고 때로
는 내가 이 세상에 있기 전의 세상을, 그리고 내가 떠난 피안의 세계까지 그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과 공간을 우리의 뜻대로 조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비록 마음으
로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을지라도 시간과 공간은 엄연히 몸짓의 터이면서도 동시에 삶의
제약이기도 합니다. 마음과 몸은 그렇게 물과 그릇과 같아서 따로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
다.
아무리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이며 제공된 공간은 ‘여기’일
뿐입니다.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으며 앞으로의 미래는 당겨올 수 없습니다. ‘저기’는 바라
만 볼 뿐 내게 허용된 공간이 아닙니다. 오늘의 삶은 영원한 삶을 채워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삶이
며,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온 세상을 완성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리입니다. 내 삶의 ‘지금’과 ‘여
기’는 유일함이며 처음이며 마지막입니다. 오늘의 삶이 온전하지 않으면 결코 내 삶의 전부는 온전
할 수 없으며, ‘여기’의 삶이 충만하지 않으면 결코 내가 가꾸는 세상이 온전할 수 없습니다. 오늘이
소중하고 이 자리가 귀한 이유이며 그 안에 내 모든 것을 담아야 할 이유입니다. 이렇게 지금과 영
원, 여기와 온 세상은 부분을 담고 있는 전부, 전부를 이루고 있는 부분처럼 따로 떼어 놓을 수 있
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실현되는 때는 지금이며 하느님께서 지켜 주는 자리는 내가 있는 이 자리입니
다(민수 6,24).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에 늘 준비하고 있어야(루카 12,40) 하
며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야고 4,14), ‘지금’이 내 생명이 충만할 때이며 ‘이 자
리’가 내 삶을 온전하게 실현할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소중한 삶을 허락하신 하느님
께서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입당송) 동고동락하신다니 삶은 그 자체로 거룩함이며 축
복입니다. 내가 늘 만나는 그 사람, 내가 하는 매일의 일이 그다지 유별해 보이지 않더라도 혹은 대
단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 모든 것은 처음이며 마지막이며 유일한 하느님의 축복의 선물이기에
내 모든 정성을 아낌없이 담아야겠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쏟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지금의 이 자리의 삶을 가꾸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면 때
가 되어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나는 것 역시 아름다운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떠남, 곧 죽
음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입니다. 때가 되어 비우고 물러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아낌
없이 채우고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박동호 안드레아 신부·신수동성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