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토)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마르 9,2-13]
[복음묵상]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은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는냐며 불평을 토로하기도 한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등산가는 분명히 아니다. 그러면서도 자주 산으로 올라가신다. 등산하러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도하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하기 위해서 하필이면 산으로 올라가는 것일까? 성경안에서 산은 여러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산은 지상보다 하늘에 더 가깝다고 여기는 것이 보통이고, 외딴 장소로 고요한 공간을 지칭하고 있다. 기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건이다. 하늘을 가까이 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침묵과 고요속에서 하느님과 대화나누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거룩한 열망과 고요한 마음을 가지고 골방기도를 해야 한다. 모든 것에서 잠시라도 떨어져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가끔 우리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유보한 공간과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등산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당신 스스로 하느님 아버지와 대화를 가지셨고, 또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아버지과의 대화를 가지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는 완전한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대화를 24시간 온종일 가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흉내는 내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일생동안 산으로 올라가는 시간을 얼마큼 자주 마련하는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기도시간은 꼭 필요한 시간이고 공간이다. 바로 이때 영원한 시간과 영원한 공간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순간이 영원과 연결되는 시점이고, 무의미가 의미와 연결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허무가 충만함과 연결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도로 사도는 이러한 영원한 황홀감때문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우리 인생에 이러한 산으로 올라가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면 나역시 덧없고, 무의미하기만 한 세월과 세상, 인생때문에 제 정신으로 아마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나라고 자살의 충동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 내겐 산으로 올라가자고 초대하는 예수님이 계신다. 얼마나 든든한 분인가!
-------<묵상초대 노래>--------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
나는 나만 생각했었는데 나를 위해 주님 불렀는데
매 자리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나의 이름 잊지 않으셨네
가슴 메어질듯 그 음성 나를 부르시네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 신음 할때도
사랑한다 내가 너를 원한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
내가 이해받기를 바랬고 내가 위로 받기 원했는데
못 자국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 고통 중에도 내 이름 가슴에 안으셨네
녹아 내릴듯한 그 눈빛 내게 말하시네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 신음 할때도
사랑한다 내가 너를 원한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다
-성바오로 수도회 수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