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부산교구 호계성당 김영태 신부
2월 18일 연중 제 7 주일 복 음 : 루가 6, 27-38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체험이 무엇이며, 가장 아프고 슬픈 체험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질문에 대해, 한가지 단어로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으로 아이가 자라나고, 아내의 푸근한 사랑으로 피곤에 지친 남편이 생기를 얻으며, 남편의 자상한 사랑으로 일상 삶의 무게에 짓눌렸던 아내가 웃음을 찾게 되고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한 여인에 의해, 무의미했던 청년의 삶이 새로워지니까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랑만큼 아프고 슬픈 체험도 없을 것입니다. 넉넉할 때는 그렇게도 다정했던 이웃사촌이, 가장 어려운 순간을 맞이한 후부터는 냉정히 돌아서 버린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가깝게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마저도 남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한 그 만큼씩 더 상처받았던 체험들을 여러분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만큼 소중한 것도 없으며 사랑만큼 아픈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랑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말아야 합니까? 라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랑해야 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사랑을 함으로써 생기는 아픔과 절망의 상처가 아무리 깊다 할지라도 사랑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사랑할 것이며, 얼마나 성실성을 가지고 사랑을 지속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최고 절정인 '원수에 대한 사랑'을 통해 우리는 인간 삶의 정점을 만나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누가 오른 빰을 치거든 왼 빰마저 돌려대고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주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끝까지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며, 완전한 인간에 가까이 다가선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사는 사람만이 변질된 사랑, 위선적인 사랑, 가장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며 인간의 참모습, 있어야 할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고민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과연 무조건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사상은 결코 피해를 입힌 사람이나 주위의 제 삼자가 요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기도 속에서 고민하면서 베풀 수 있는 하나의 선물인 것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악에도 굴복하지 않고 살고 계신 여러분, 새롭게 힘을 모을 시간입니다. 진실된 사랑의 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 예수님은 늘 함께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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