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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간 목요일(홀수 해) - 여성만큼의 남자의 빈부분 독서 : 창세 2,18-25 / 복음 : 마르 7,24-30 오늘 복음 한 구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띠로 지역으로 가시어)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24절)고 하였다. 예수님의 사사로운 심정을 묘사해 놓은 글인듯 싶어 마음이 그 구절에서 머물게 되었다. 휴가 때만은 직분의 틀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쉬고 싶고, 고정화된 삶의 만남들로부터 떠나 있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안락한 쉼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곧 사람들에게 알려져 결국은 마귀 들린 딸의 치유를 간절히 바라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공인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쉼의 시간에도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야 함을 묵상케 해 주는 구절이라 하겠다. 어떤 신부님은 늘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언제 어느 곳에서건 고해성사를 청하는 이가 있으면 즉시 그 가방에서 작은 영대를 꺼내 성사를 주기도 하고, 기도문이 적혀 있는 상본들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언제든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이가 되어 주기로 결심한 이들이 사제들일진데 나 또한 그렇게 늘 준비된 사랑의 복주머니들, 마음의 복 주머니들을 지니고 다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을 때에 즉시 삶(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준비된 모습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할까? 결심하기는 쉬운 데 구체적으로 실천하기는 퍽 어려울 듯 싶다. 오늘 독서에서는 삶을 함께 나눌 배우자를 아담에게 배려해 주시는 하느님의 창조 이야기가 봉독되었다. 독서 내용으로 보아 남성의 몸에는 하느님이 여성을 만들 때 떼어낸 만큼의 빈 부분이 상존하고 있다. 그래서 남성에게는 자기 완성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하겠다. 그것도 아담이 잠들어 있었을 때 떼어내셨기에 하느님께서 짝지워 주신(또는 짝지워 주실) 이성에 대한 인지적 갈망보다는 정해지지 않은 이성에 대한 무의지적 목마름으로 무수히 많은 대상들 속에 자기 짝이 누구인지를 찾아나서게 된다. 왜 하느님은 "아담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실"(18절) 때 아담과 함께 하지 않으셨을까 반문해 보게된다. 결국 배우자는 아담의 노력이나 동참이 아닌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짝지워 주시는 동반자임을 깨닫게 해 주는 글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배려해 주신 삶의 동반자들을 즐거이 만나며, 사랑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연중 제5주간 목요일(홀수 해) - 여성만큼의 남자의 빈부분 독서 : 창세 2,18-25 / 복음 : 마르 7,24-30 오늘 복음 한 구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띠로 지방에 가시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계시려" (24절)하셨다는 언급을 해 놓았다. 예수님의 사사로운 심정을 묘사해 놓은 글인듯 싶어 마음이 그 구절에서 머물게 되었다. 휴가 때만은 직분의 틀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쉬고 싶고, 고정화된 삶의 만남들로부터 떠나 있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안락한 쉼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곧 사람들에게 알려져 결국은 마귀 들린 딸의 치유를 간절히 바라는 시로 페니키아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공인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쉼의 시간에도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야 함을 묵상케 해 주는 구절이라 하겠다. 어떤 신부님은 늘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언제 어느 곳에서건 고해성사를 청하는 이가 있으면 즉시 그 가방에서 작은 영대를 꺼내 성사를 주기도 하고, 기도문이 적혀 있는 상본들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언제든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이가 되어 주기로 결심한 이들이 사제들일진데 나 또한 그렇게 늘 준비된 사랑의 복주머니들, 마음의 복 주머니들을 지니고 다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을 때에는 즉시 삶을 나눌 수 있도록 준비된 모습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할까? 결심하기는 쉬운 데 구체적으로 실천하기는 퍽 어려울 듯 싶다. 오늘 독서에서는 삶을 함께 나눌 배우자를 아담에게 배려해 주시는 하느님의 창조 이야기가 봉독되었다. 독서 내용으로 보아 남성의 몸에는 하느님이 여성을 만들 때 떼어낸 만큼의 빈 부분이 상존하고 있다. 그래서 남성에게는 자기 완성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하겠다. 그것도 아담이 잠들어 있었을 때 떼어내셨기에 하느님께서 짝지워 주신(또는 짝지워 주실) 이성에 대한 인지적 갈망보다는 정해지지 않은 이성에 대한 무의지적 목마름으로 무수히 많은 대상들 속에 자기 짝이 누구인지를 찾아나서게 된다. 왜 하느님은 "아담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실"(18절) 때 아담과 함께 하지 않으셨을까 반문해 보게된다. 결국 배우자는 하느님께서 짝지워 주시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시는 글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배려해 주신 삶의 동반자들을 즐거이 만나며, 사랑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요즈음 이혼율이 점점 높아가는 걸 보면 아직도 하느님이 정해 주신 배우자보다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미인지(未認知)의 짝을 향한 헛된 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많은 세상인듯 싶다. 오늘 독서는 이러한 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2007년 2월 교구사제들의 피정 기간 중 주례를 맡아 강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두 가지 묵상을 더 정리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내가 잠든 사이에, 하느님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 나와 우리에게 삶의 동반자를 만들어 주시는 분이시다. 훌륭한 본당 신부는 신자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에 그들의 벗(교우)들을 만들어 주는 이여야 한다. 그동안 필자는 엠이 지도신부를 24년간 해왔는데, 2박3일 엠이주말을 통해 서로 가깝게 대화를 나누며 살지 않던 부부들이 주말동안 서로 친구가 되어 가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아담에게 그가 잠든 사이에 멋진 삷의 배우자를 창조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의 마음을 묵상해 보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시리아 페니키아 이방 여인의 소망을 들어주시어, 복음의 은총이 이스라엘 지역적 영역을 뛰어넘어 이방 지역으로 퍼져 나감을 보게 해 주었다. 아마 이 일 이후 기록이 성서에는 없지만 짐작해 보건대 예수님이나 그분의 제자들이 다음에 티로를 방문하게 되었다면 틀림없이 그 여인은 그들을 국빈 대우해 주었을 것이리라. 삶의 멋진 친구들을 많이 만들며 살아가는 것은 또 하나의 하느님의 은혜요 축복이라 생각하게 된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나의 친구로 만들지 기대 속에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연중 제5주간 목요일(홀수 해) - 여성만큼의 남자의 빈부분 / 생의 동반자를 만듦에 대해 - 이석재 신부님
2007. 2. 8. 오전 8: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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