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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주간 휴가인 관계로 이전 강론을 올립니다.
연중 제 5 주간 화요일.
................................................................................................................................. 예수께서는 전통에 사로잡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위선자들’이라는 말로 꾸짖습니다. 여기에서의 위선자들이라는 말은 ‘배우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즉 자신들의 내면은 속인 채 그럴싸하게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신앙의 삶이란 자신의 내면과 삶이 같아야 합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보여지는 모습을 그럴싸하게 교묘히 속이면서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갑니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자신을 포장하며 그렇지 못한 이들을 몰아세웁니다.
지금 대상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 모두를 지칭한다고 하기보다 가르치는 것과 삶이 다른 이들을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예를 든다면 외적인 형식에 사로잡혀 그 안의 내용을 잃어버린 이들이 겉의 모습만으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고 꼬투리를 잡으려 하는 모습이 가증스러운 것이죠.
그 한 예로 코르반을 드시는데, 이것은 본시 하느님께 대한 충성의 마음에서 신앙적 순수성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법은 너무나 숭고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을 악용해서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느님께 바친다고 하고, 실상은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의무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법을 예로 드시면서 외적으로 하느님께 충실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하느님께도 부모님께도 충실하지 않는 것을 꼬집고 계십니다. 또한 배우처럼 연기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교묘히 저버리는 당시의 예배 행위에 대해 꼬집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본다면 하느님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면서 가정에 소홀한 것도 이 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다 바쳤다는 것은 단순히 봉사라는 단어의 시간적인 길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모든 것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차선이 최선의 가장 나쁜 원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의 삶에서 차선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매 순간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봉사가 최선이고 가정이 차선일 수 없으며, 가정이 최선이고 봉사가 차선일 수 없습니다. 직장이 최선이고 다른 일이 차선일 수 없습니다. 신앙인에게는 모든 순간이 최선의 순간입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연기를 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내 안의 진실을 쏟아 부으며 최선을 다하기에 향기가 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살기에 내 삶 모두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
차선이 최선의 가장 나쁜 원수이다 - 조성호 신부님 /2007.02.06
2007. 2. 6. 오전 10: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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