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종교 특성 중 하나로 "근본주의"를 말할 수 있습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한국에 들어온 종교들이
그 종교의 근본에 접근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우리 가톨릭이 그러하고,
한국 불교의 경전에 대한 이해가 그러합니다.
한국 개신교는 처음 한국에 선교할 때의 선교 원칙들을
여전히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근본주의가 우리의 종교 생활을
"형식적"으로 이끌어간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근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자기 종교의 근본에 다다르려는 노력은
분명 교회와 신앙을 든든한 기반 위에 서게 하고,
세상에 대해 강력한 종교적 결속과 힘의 근원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근본으로 돌아감"의 의미를
단순히 그 때의 형식에로 돌아가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해서 문제입니다.
가톨릭에서 가장 흔한 한 예가 "주일 미사 참례"입니다.
주일 미사 참례는 신앙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하나의 전례 행위입니다.
그런데 미사 참례를 못한 것이 고백의 주된 요소,
혹은 유일한 요소가 된다는 것은 분명 하느님의 계명이 사람의 형식에 얽매인 결과입니다.
하느님의 계명(3계명)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것이죠.
주일 미사를 드리고 나가 거리낌 없이 거짓을 산다면
그것은 주일을 참례함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때는 고백거리를 만들기 위해
주일 미사를 일부러 빠져야겠다는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 지를 잊고, 사람의 형식에 얽매인 신앙을 사는 것입니다.
미사를 참석하는 이유는 주일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거룩하게 살아낼려는 신앙의 한 행위입니다.
주일 미사를 참석했다고 주일을 사는 이유가 충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하느님 신앙의 근본을 사는 것은 바로 그 "참된 정신"을 헤아려 사는 것입니다.
주일의 의미는 그래서 보다 더 깊고 넓은 이해를 요구합니다.
"주님, 당신의 너른 마음을 저의 일상 속에서 살게 이끌어주소서. 저의 생각만이 유일한 옳음이 아님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흔히 하는 이야기로 한국에 들어온 종교들이
그 종교의 근본에 접근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우리 가톨릭이 그러하고,
한국 불교의 경전에 대한 이해가 그러합니다.
한국 개신교는 처음 한국에 선교할 때의 선교 원칙들을
여전히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근본주의가 우리의 종교 생활을
"형식적"으로 이끌어간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근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자기 종교의 근본에 다다르려는 노력은
분명 교회와 신앙을 든든한 기반 위에 서게 하고,
세상에 대해 강력한 종교적 결속과 힘의 근원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근본으로 돌아감"의 의미를
단순히 그 때의 형식에로 돌아가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해서 문제입니다.
가톨릭에서 가장 흔한 한 예가 "주일 미사 참례"입니다.
주일 미사 참례는 신앙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하나의 전례 행위입니다.
그런데 미사 참례를 못한 것이 고백의 주된 요소,
혹은 유일한 요소가 된다는 것은 분명 하느님의 계명이 사람의 형식에 얽매인 결과입니다.
하느님의 계명(3계명)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것이죠.
주일 미사를 드리고 나가 거리낌 없이 거짓을 산다면
그것은 주일을 참례함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때는 고백거리를 만들기 위해
주일 미사를 일부러 빠져야겠다는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 지를 잊고, 사람의 형식에 얽매인 신앙을 사는 것입니다.
미사를 참석하는 이유는 주일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거룩하게 살아낼려는 신앙의 한 행위입니다.
주일 미사를 참석했다고 주일을 사는 이유가 충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하느님 신앙의 근본을 사는 것은 바로 그 "참된 정신"을 헤아려 사는 것입니다.
주일의 의미는 그래서 보다 더 깊고 넓은 이해를 요구합니다.
"주님, 당신의 너른 마음을 저의 일상 속에서 살게 이끌어주소서. 저의 생각만이 유일한 옳음이 아님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