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화요일> 여기에 기적과 구원을 이룬 믿음이 있습니다- 이기양 신부님

2007. 1. 30. 오전 9:04:51

글자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여기에 기적과 구원을 이룬 믿음이 있습니다

 

제 1독서 : 히브 12,1-4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복    음 : 마르 5,21-43 (소녀야, 일어나라.)

 

   여러분에게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십니까? 남편을 믿고 부모를 믿는다는 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돈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딴 주머니를 차는 아내들이 요즘에는 많다고 합니다. 딴 주머니를 갖는다는 것은 언제 헤어질지 모르니 대비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심이 없다는 것을 뜻하고, 또 그런 준비를 하고 있으면 별일 아닌 것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 고약한 사람의 심리입니다. 믿어야 할 관계에 믿음이 없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신자(信者),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신자에게 믿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고, 본당 신부나 수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굳이 함께 모일 필요도 없고 신자라고 불릴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믿음은 생명보다 더 중요합니다. 간혹 하느님보다 제물을 더 믿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결국 불행한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어 이스카리옷 사람 유다가 그렇고 사도행전의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가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굳건한 믿음이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지 묵상해보도록 합시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열두 해 동안 하혈증을 앓던 여인을 낫게 하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두 이야기가 함께 섞여 있습니다. 이 두 이야기의 주제는 ‘믿음’입니다. 회당장의 믿음과 여인의 믿음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수없이 많은 회당장이 있었고 수없이 많은 군중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특은을 받은 사람은 야이로라는 회당장과 열두 해 동안 심한 병을 앓았던 이 여인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그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회당장 야이로는 다 죽게 된 딸을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그런데 회당장이라는 직책은 예사로운 직책이 아니었지요. 당시 일상 생활에서의 종교의 중심은 작은 마을에까지 퍼져 있던 회당이었습니다. 회당장은 유다인들의 율법과 풍습을 지키면서 매주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성경 본문을 낭독한 다음 그 본문을 다른 본문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설교를 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고, 신앙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시대로 말하면 공소 회장과 같은 역할을 맡은 자로 종교적인 신망이 아주 높아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지요.
   그런 사람이 오늘 예수님을 찾아와 애원을 한 것입니다. 당시 유다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고 전통을 업신여기는 자로 알려져 외면당하고 배척을 받고 있었습니다. 회당장이 예수님께 쫓아가서 무릎을 꿇고 애원을 했다는 것은 사회적 통념상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예수님께 애원하지만 곧 그 일념마저 넘어선 믿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채 당도 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와서 말합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르5,35)
   딸이 죽었으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일을 그만두라는 사람들의 반응 앞에서 야이로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분으로 예수님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시련은 신앙을 성숙시키기도 하지만 시련이 신앙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야이로 회당장에게 시련은 예수님께로 더욱 더 다가서는 성숙의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시련과 유혹이 가로막았지만 야이로의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는 결국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키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하혈증을 앓았던 여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인은 열두 해 동안이나 가산을 다 탕진할 정도로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여러 의사를 찾고 좋다는 약을 모조리 써보았으나 차도는 없었고 이제는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지요. 그러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던 것입니다. 돈도 없고 별다른 연줄도 없었으며 더군다나 열두 해 동안이나 병을 앓았으니 그 몰골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병들고 초라한 여인은 온 힘을 다해 군중 속에 끼여 따라가다가 뒤에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물으시지요.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마르5,30)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하고 물으십니까?”(마르5,31)
   물밀듯이 밀려드는 군중들을 보면 제자들의 반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갖고 손을 댄 사람과 그저 스쳐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의 접촉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간절히 원했던 여인은 치유를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간 것을 아시지요. 또한 은총을 받고 슬며시 도망갈 수 있었던 여인 역시 알게 됩니다. 옷자락만이라도 잡으면 나을 것이라는 그 확고한 믿음이 치유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더욱 크게 승화되어 이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으로 깊어갔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마르5,34)
   믿음과 믿음이 교감이 되는 순간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를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능력과 인간적인 경험, 그리고 주변의 반응들을 다 놓고 오로지 확신으로 다가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반드시 시련과 유혹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시련과 유혹을 이겨낼 때 다른 차원으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것이지요. 그때 하느님을 알게 되고, 그렇게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느님과 함께 있고 싶어합니다. 몇 시간째 조배실에 앉아 기도를 해도 지루한 줄을 모르지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야이로 회당장의 믿음이나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잡기를 바랬던 여인의 믿음이기보다는 많은 경우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군중의 믿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옷자락을 잡지 못하는 이유는 자존심이나 체면, 그리고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넘어서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없어질 것 같은 시련과 유혹에 빠지게 되지만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의 결단을 내릴 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새로운 차원이 열리지요.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 주변에는 수많은 회당장이 있었으나 오직 야이로만이 예수님의 은총을 입습니다. 또 수많은 병자들이 치유해 주실 것을 청했지만 한 여인만이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나의 모든 지식과 경험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투신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천여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만큼만, 또는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믿겠다는 사람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익명의 군중들, 말 그대로 신도들의 무리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깊이 있게 알아서 진리를 만나고 자유롭게 되기를 원한다면 야이로 회당장이나 하혈증의 여인과 같은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도 진실한 사람들의 ‘믿음’안에서 기적과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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