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30. 월
| 마르코 복음 5장 21-43절 |
|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는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다녔다.
|
|
|
|
| 삶의 수직적 차원 이중섭 신부님 |
|
오늘 복음에는 기적 이야기가 두 개 나옵니다. 하혈하는 부인을 고쳐주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 5,34). 예수님은 그 여자를 딸로 삼을 정도로 살려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은 치유를 재확인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에 가서 누워 있는 아이의 방에 들어가셨습니다. 여기서 아이가 누워 있는 것은 삶의 수평적 차원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야, 일어나라!”(마르 5,41). 그러자 죽었던 소녀가 곧바로 일어나 걸어다녔습니다. 이것은 삶의 수직적 차원을 뜻합니다. 우리는 수평적인 삶의 차원을 수직적인 삶의 차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 걱정하는 것, 용서하지 못하는 것 모두 수평적인 삶입니다. 우리 삶이 수직적으로 하느님께 열릴 때 수평적인 삶도 열리고, 이웃도 보이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항상 ‘탈리타 쿰’이 필요합니다. 매순간 ‘탈리타 쿰’이 되려면 우리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분의 인격을 믿어야 합니다.
|
|
|
|
| 눈 |
|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펑펑 눈이 쏟아질 것처럼 캄캄하다. 그 곱던 잎새들을 땅으로 돌려보낸 후 늘어지게 겨울잠을 자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눈을 기다린다. 이 나뭇가지들 위로 눈송이들이 사뿐사뿐 내려와 앉으면 얼마나 예쁠까? “눈이 오면 좋지?/ … 턱을 고이고 앉아/ 아주 천천히 지상으로 하염없이 내려오는/ 눈송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행복해./ … 내리는 눈을 이렇게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누군가 꼭 올 것만 같지?/ …” (김용택, ‘눈이 오면 참 좋지?’ 중에서). 오늘 새벽에서 아침 사이에 눈이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밖을 내다보고 있는 새벽. ‘이렇게 차가운 것 안에 봄이 숨어 있었구나!’ 두꺼운 옷을 입지 않고 바깥으로 나왔는데도 난로가 지펴진 것처럼 온 천지가 포근하고 가는 곳마다 팝콘처럼 꽃망울들을 터트리고 있는 나무들에서 날아오는 향기. 그런 봄 길을 걸으며 감탄을 쏟아내던 때가 떠오른다. 이렇듯 다른 계절 속에 있는 화사하고 포근한 것들을 모두모두 합한 것보다 눈(雪)이 좋다. 이토록 차갑고 매운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그 사랑스러운 눈이 있기 때문인 것을. 그 안에 아무리 추운 것이 숨어 있어도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기에 견딜 수 있는 것.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을 다 합해 놓아도 그 하나를 대신할 수 없는 것. 그토록 너무너무 소중한 것이 있다. 그토록 너무너무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 소중한 것을 잃으면 세상의 전부를 잃어버린 것처럼 아플 테니…. 오늘도 꾸준히 사랑하는 일, 그 일밖에 없으리라. 권양희 |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