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 있는 하느님의 빛
-- 윤준원 신부 -
어떤 분이 영세를 받고 난 뒤 그랬습니다. “아아, 영세를 받고 나니 빌 곳이 있어서 참 좋구나.” 누구에게 빈다는 말입니까? 하느님이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빌 수 있지만 특별히 인생이 어렵고, 힘들때, 우리는 하느님께 빌어야 합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는 그 혼돈의 순간에 하느님의 영이 그 물위를 감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창세1,2).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혼돈의 순간, 아무런 희망도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그 위기의 순간일지라도 어둠 속 언저리에는 하느님의 영이, 하느님의 빛이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빛을 찾고 다시금, 희망의 길, 삶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가는 길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걱정이 되어 깨우시니, 주님께서는 바람과 호수를 잠잠하게 하시고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무슨 믿음입니까?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켜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주님께서는 그냥 제자들에게 도움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당신을 깨우셨을 때에야 비로소 도움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 없이 나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을 향한 깨움, 당신을 향한 기도 없이 나의 어려움을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냥이 아니라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을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신 후에야 선조들과 맺었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탈출 2,23-25).
시편에서는 ‘내가 주님, 너희의 하느님이다. 너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 올린이다. 네 입을 한껏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시편 81,11).하셨습니다. 그냥이 아니라 정성껏 기도하면서 한껏 벌린 그 입을 보시고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힌 괴로운 순간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불러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대답해주고, 네가 몰랐던 큰 일과 숨겨진 일들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예레 33,3)고 하셨다. 곤경에 빠졌을때 주님을 부르고 정성껏 기도하면 내가 몰랐던 큰일, 숨겨진 일들을 나에게 알려주셔서 새로운 길을 안내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7,7-9)하셨습니다.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 하느님을 향한 깨움이 있어야 도움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젊었을 때 마니교에 빠져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까의 기도에 힘입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삽나이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님을 찾았나이다.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있었나이다.”
절망과 회의 방탕과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렸지만 그 가운데에 하느님의 빛, 하느님의 영이 함께 계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일찍 하느님을 깨달았더라면 죄도 덜 지었을 것이고, 하느님을 위해서 더 큰 일을 했을 것이라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자들도 물이 배에 가득 차고 난 뒤에야 주님을 깨웠습니다. 만일 미리 깨웠더라면 더 큰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혹시 아직도 주님을 찾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우구스티노성인처럼 주님을 떠나 내식으로만 살면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러면 빨리 주님께 나아와 기도드리고 다시금 복된 삶을 살도록 마음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