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올 한 해도 일 많이 하셨지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무엇 제가 했나요. 교우들의 정성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이지요.”
가끔 이런 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별로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편 곰곰이 살펴보면 이런 이야기 보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신부님을 보면 하느님의 향기를 느낍니다.”
어떤 칭찬보다 부족하지만 저를 통해 하느님의 향기가 있다고 전해진다고 할 때 사제로서는 보람입니다. 그것이 사제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제들의 맏형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탄합니다.(루카4,15) 그 이유는 그 가르침에서 하느님의 향기를 물씬 풍겼기 때문입니다, 회당에서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펴신 예수님은 힘 있게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4,18-19)
예수님의 선포는 앞으로 공생활의 선언이며 핵심입니다. 선포하심에 있어 망설이거나 주저함이 없습니다. 힘이 있고 생동감이 있습니다. 사제인 저로서도 그런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인이라면 끊임없이 닮아가야 할 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능력이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족한 나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자라는 나를 조건 없이 받아주시는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바로 신앙인의 힘의 원천이고 존재 근거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런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잊고 살기 때문에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 쉽게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주님의 향기를 품으면, 영적인 생동감을 지닐 수 있을까? 예수님을 주시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오늘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4,21)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주님께 시선을 두고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은총의 소리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세속적인 일과 관심에 집중하면 할수록 은총에서는 멀어지게 됩니다. 교회가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권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은총의 소리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생명의 답을 주실 것입니다. 지혜로운 길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닮아가야 할 점...[까만 사제] /2007.01.26
2007. 1. 27. 오전 9: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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