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이리때 가운데 보냄 받은 어린양[강영구신부님]
이리 떼 가운데 보냄받은 어린양
-강영구신부-
+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어린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그대에게
건조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산과 들이 매달라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눈과 함께 비가 내려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었습니다. 하늘의 손길이 아니면 누가 이처럼 촉촉하게 대지를 어루만질 수 있겠습니까? 곧 봄이 온다는 소식입니다.
스승 예수님으로부터 뽑혀서 파견된 제자들은 이리 떼 가운데 있는 어린양입니다.
‘이리 떼 가운데 있는 어린양’이란 한마디로 잘 차려진 밥상입니다.
굶주린 이리 떼가 어린양을 내버려둘 리 없습니다. 달려들어 갈가리 찢어 집어삼키고 맙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사나운 이리 떼 가운데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그 무엇도 지니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합니다. 돈도 식량자루도 신발로 지니면 안 됩니다.
비무장(非武裝)으로 가서 이리 떼에게 고스란히 자신을 밥으로 내어주라는 말씀입니다.
스승 예수님은 이 땅에 밥으로 오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아 구유(밥통)에 넣었습니다(루가2,7). 밥통에 든 것은 밥입니다. 실재로 예수님은 돌멩이를 빵으로 만들어보라는 악마의 제의를 거절합니다(마태4,3). 돌멩이로 빵을 만들어 굶주린 백성들을 먹이는 권력자가 되기보다 스스로 빵이 되어 먹히는 약자의 길을 선택합니다. 빵으로 먹히고 싶은 예수님의 열망은 성체성사(聖體聖事)를 세우게 됩니다(루가22,19-20).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요한6,57)
잡아먹는 쪽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먹히는 쪽이 더 힘 있습니다. 잡아먹는 것들은 먹히는 것의 힘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내에게 먹히는 남편, 남편에게 먹히는 아내가 되십시오. 자식에게 먹히는 부모, 부모에게 먹히는 자식이 되십시오. 사랑은 먹는 것이 아니고 먹히는 것입니다.(一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