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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7.토
| 마르코 복음 4장 35-4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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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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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히 의탁함 이중섭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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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풍랑은 악의 세력이 날뜀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 세력을 무력화시켰습니다. 하느님께 저항하는 세력으로 상징된 바다의 물결을 잠잠하게 만든 것은 더러운 악령을 굴복시키는 그분의 신적인 권능을 뜻합니다(마르 1,27 참조). 이런 업적은 제자들이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경찰에 쫓기던 유다인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농가의 헛간으로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헛간 밑으로 뛰어내린 다음, 아들에게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밑을 내려다보니 컴컴해서 아버지는 안 보이고 목소리만 들렸습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주저주저하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여기 있다. 나만 믿고 뛰어내려라!’ 아들은 아버지를 믿고 밑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주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 품안으로 뛰어드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참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굳은 신앙, 그분께 철저히 의지하고 의탁하는 자세, 이러한 믿음만 있다면 다른 것은 모두 덤으로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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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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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큰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엄마가 일을 하셨기 때문에 나는 방학이 되면 으레 큰집에서 지냈다. 그래서인지 큰어머니는 다른 사촌들보다도 나를 끔찍이 아껴주셨는데, 어느새 칠순을 맞으신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 전부터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는데 올해는 칠순잔치에 와서 밥 한 끼 같이 먹자며 회사로 직접 전화를 하셨다. 이번에도 속시원히 대답을 못해드리고 전화를 끊고나니 하루 종일 맘이 편치 않았다. 큰어머니는 아홉 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단다. 그래서 친정 아버지께서 차라리 일찍 시집이라도 가서 호강하라고 어린 나이에 큰아버지와 짝을 지어주셨다. 하지만 장손인 큰할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시자 자연스레 둘째인 우리 할아버지가 살림을 물려받게 되었고, 하루아침에 큰어머니는 종갓집 맏며느리가 되었다. 일 년에 제사가 열두 번, 자식 다섯에 대대로 물려오던 농사까지, 평생 교단에 선 남편을 대신해 혼자 큰 살림을 떠맡아 해오신 큰어머니는 천성이 일을 해야 편한 사람이라며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셨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꼬부랑 할머니가 다 되셨다. 당신이 시집살이 해봐서 안다며 며느리를 둘이나 보고도 일찌감치 분가시켜놓고는 지난해부터 치매기가 생긴 98세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계신 큰어머니. 잠자리에 들기 전에 큰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할아버지 사실 날 얼마 안 남은 것 같어. 언제 한번 뵈러 와라. 젊어서 그렇게 꼬장꼬장 하시던 양반이 돌아가실 때가 되니 애기다, 애기.” 오늘 할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렸는데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도중에 갑자기 아랫도리를 가리며 부끄러워 하시더란다. 순간 정신이 드셨나 싶어 부끄러움을 덜어드리려고 그러셨단다. “으이그, 아직도 부끄러우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고마워!” 하고 환하게 웃으시고는 눈물을 글썽이시더란다. 이은정 | 편집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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