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인들에게 단식은 표징이자 기도였습니다.
그들에게 단식은 메시아를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표시였고,
또한 어서 빨리 그들의 기다림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유다인들이기에
그들에게는 여전히 기다림의 단식과 단식을 통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단식은 이제 새로운 의미가 됩니다.
또 다른 메시아나 예수님이 다시 어서 빨리 오시기를 바라기 위해서
우리는 단식을 하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과 함께 살았으며,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단식은 예수님을 자기 삶의 한 가운데 모시기 위한 갈망이며,
자기 삶의 한 가운데 모시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준비와 갈망은 흔히 세 가지 이유와 방법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가볍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에 대해 갈망합니다.
처음에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살고자 하는 단순함으로 시작하였지만
살아가면서 많은 자기 규칙들과 관념 그리고 주장으로 자신의 삶을 꾸며 놓고 맙니다.
온 종일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 한 가지 ‘하느님을 모시는 것’을 놓치고 있기도 합니다.
단식은 그래서 첫 번째로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을 가볍게 만드는 것입니다.
단순히 밥을 먹지 않고 굶는 것이 구약의 단식, 유다인의 단식이라면
그리스도인의 단식은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는 일과 자기 생각을 끊고
자기 시간과 영혼을 가볍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의 현존 양식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시며
그 나눔의 잔치를 가난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의 단식은 그래서 예수님의 이 현실과 마주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삶과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의 현존 양식을 기억하고,
그분이 마주하기를 원하는 현실 앞에 자신도 동참하며
그분과 나와 그분이 바라보던 세상을 같은 눈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단식은 더욱 더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기를 갈구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의 바람이 바로 우리의 갈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갈구는 우리 영혼에 있어서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고
우리 삶에 있어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평화에 대한 갈망입니다.
단식은 그 사랑과 기쁨과 평화에 대한 예수님의 갈망을 기억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 속에 덧붙여진 많은 일들로부터 벗어나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서고,
예수님이 마주하던 시간과 사건들을 기억하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기를 갈망했던 예수님을 더욱더 닮아나가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우리 시대의 단식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시작할 때 우리는 마르꼬 복음에서 왜 주님이 우리 가운데 이미 와 계시고,
지금이 왜 기쁨의 하느님 잔치를 거행하는 때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갈망으로 저의 빈 영혼을 채워주소서. 아멘.”
단식 - 이회진 신부님 /2007.01.15
2007. 1. 15. 오전 10:11:18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