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이 사시던 때에 나병 환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병을 가진 사람과의 그 어떤 접촉도 모두 하느님의 의지를 거스르는 것으로 이해되었죠. 예수님이 손을 대어 그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은 상처 입은 그들에게 이제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삶의 자리에 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러한 갑작스런 정화 의식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삶의 자리 근처에 갑자기 다른 누군가 새로 들어온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우리가 내치던 죄인이고, 보기 흉한 사람이고, 어떤 잘못을 해를 우리에게 끼칠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손 한 번 내밀고는 사람들 가운데 넣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기 흉하고 싫은 사람마저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마음 속에 이런 질문이 꿈틀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내 아픔은 치유해 주시려는 마음이 없으신 것인가?" 우리는 자주 하느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자주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의문을 갖습니다. 분명 그분이 나와 함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분명 그분이 나의 아픔을 측은히 여기고 어루만져 주심을 알면서도 "정말 그분은 나에게 손을 뻗으신 것인가?"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의문에 앞서 먼저 선행된 동작 하나를 자주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발 앞에 엎드리며 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찾아오십시다. 그러나 내가 그분께 내 맘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그분이 아무리 문을 쾅쾅하고 두드린다 해도 나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그분은 어쩔 수 없이 문이 열릴 때까지 문 앞에서 서성이며 밤이슬을 맞아야할 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고자 하는 그곳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찾아 나서는 그곳에 이미 와 계십니다. 그러면 그분은 당신이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 몸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통해 다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가까이 오는 것마저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보시며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그들을 당신 삶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먼저 당신과 우리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고, 우리와 당신의 뜻이 머무르는 모든 것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하신다는 의미는 분명 나와 그의 사이에 더 이상의 장벽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다가오는 나병환자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묻지도 않으십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때로 우리는 질문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할 때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것이 오히려 내게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이게 도움이 될까? 진정한 도움이 아니라면 하지 않은 것은 좋이 않을까?” 하는 등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당신께서 하고자 하십니다. 그가 우리가 내주지 않은 사랑의 삶의 자리로 들어갈 수만 있기를 바라시죠. “주님, 먼저 저를 깨끗하게 해야 함을 알게 하소서. 저의 복잡한 조건들을 깨끗하게 하여 다른 이들을 맑게 바라볼 힘을 얻게 하소서. 아멘.” |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 이회진 신부님 /2007.01.11
2007. 1. 11. 오전 8: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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