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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수) 나에게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오늘복음] 그 무렵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 1,29-39]
[복음묵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세번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인내심도 거의 삼세번 이상을 넘기지 못한다. 한국사람들의 인내심은 세번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의 인내심에 한계가 없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인내는 끝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당신을 찾아와서 귀찮게 졸라대기를 기다리고 좋아하신다. 하느님의 사랑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이러한 무한히 자비로우신 주님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신다. 사람들이 아픈 사람, 마귀들린 사람 할 것없이 모두 예수님께 데려오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두 치유해주시고 마귀를 쫓아내 주신다. 사람들은 참으로 편안하게 예수님의 품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주님은 사랑의 손길을 결코 마다하지 않으신다. 단지 우리 인간이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의탁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들 때 뿐만 아니라, 그러한 불우한 이웃, 불행한 이웃, 가난한 이웃을 예수님께 데려가야 한다. 그리고는 주님의 자비를 청할 줄 알아야 한다. 당연히 우리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하겠지만, 자주 내 한계를 벗어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이럴 때는 더욱 주님께 이웃의 아픔을 대신하여 호소하면서 자비를 청해야 한다. 하느님은 인간사회처럼 귀찮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반기시고 기디리고 계시면서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무한히 베풀어주신다. 하느님의 이처럼 무한히 열려있는 자비심을 우리는 잊어버리지 말고 우리는 잘 활용하면서 감사드리는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분은 언제 어느때고 항상 당신을 활짝 열어제치시고 우리를 반기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반갑고도 편안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누구라도 자신이 거부당하거나 거절당해본 사람은, 그러면서 인생의 고독을 맛본 사람은 예수님의 이러한 활짝 열려있는 품이 얼마나 반갑고 좋은 것인지 알고 잇다.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이가 나를 외면하더라도 그분은 나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사람의 배신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앙심을 품지 않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분이 나에게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고 병들어 외로움과 두려움에 휩쓸리더라도 나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 그분이 나에게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나는 점점 그분만으로 충분해지는 것이다.
-성바오로 수도회 수사님- |
1월 10일(수)/나에게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2007. 1. 11. 오전 1: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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