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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주님 공현 전 목요일. 2006. 1. 4. 토평동.
1요한 3, 7-10. 요한 1, 35-42.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릅니다. 여기에서 따른다(아콜루테인 ἀκολουθειν)는 것은 제자로서 따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요한의 신학적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즉 요한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배와 그물이 아닌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을, 따라왔던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물론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을 따랐던 것, 지금까지 유다교 안에 있던 것, 다른 그 무엇을 믿어왔던 것에서 벗어나 오로지 예수만을 믿고 따르라는 초대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두 사람을 보고서 예수께서는 묻고 계십니다. “무엇을 찾느냐?”(요한 1, 38)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던졌던 첫 물음입니다. “무엇을 찾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신 첫 질문이기도 하고, 예수를 믿겠다고 예수께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던져야 하는 우리의 첫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늘 움직이는 우리는, 다음에 움직여야 할 때를 찾고,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면 그것은 내가 사는 삶이 아니라 살아지는 삶에 걸쳐 가는 것과 같죠.
여기에 온 우리에게도 역시 예수께서는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무엇을 찾고 있는가? 무엇을 찾고 계시죠? 무엇을 원하십니까?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만, 신앙인으로서 궁극적인 답은 이미 제자들이 했습니다.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머물고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요한 1, 38)
초등부 아이들에게 문제를 내서 맞히게 하고 맞추면 사제관에서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본당을 가든지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사제관에서 신부님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애를 씁니다. 신부님께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은 것입니다. 신부님이 만들어 주는 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전에 있던 본당에서는 자모회와 시장을 함께 다니곤 했는데, 다들 음식에 관한한 전문가들이면서도 제가 팥빙수를 만들어준다고 하면 모두들 사제관에 들어오고 싶어 했습니다. 맛있어서가 아니라 함께 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은 그야말로 맛있는 삶입니다. 그것은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죠.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요한 1, 38)
이것은 집을 물어본 것이 아니죠.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몸짓 발짓 손짓 그 모든 것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할 때 그냥 터벅터벅 걷는 것은 함께 걷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뭐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죠.
‘묵고(머물고) 계신 곳을 알고 싶다’는 것은 ‘예수의 전부를 알고 싶다’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면 함께 하고 싶고, 믿고 있다면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도 결국 사랑하는 이와 함께 머무는 것이죠. 요한이 자신의 복음서에서 ‘묵다(머물다)’라는 단어를 인상 깊게 쓰는 것은 “묵다(머물다)”가 사랑의 단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한은 늘 예수 곁에 있었고, 예수의 품에 꼭 안겨 있었습니다.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배워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의 품에 안겨(그분께 묵으며)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죠. 그러니 우리도 주 예수의 품에 안겨 사랑을 배우고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머무는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와서 보아라”(요한 1, 39)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분이 머무는 것을 보고 함께 머뭅니다.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요한 1, 39)
하루하루 그분과 함께 묵는 삶을 삽시다. 내 삶이 예수와 함께 머무는(묵는) 삶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삶은 좀더 풍요로운 삶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
다해 주님 공현 전 목요일./그분과 함께 묵는 삶 - 조성호 신부님
2007. 1. 5. 오후 6: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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