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권위 6[교도소에 간 박신부] /2007.01.02

2007. 1. 2. 오후 1:56:31

글자
권위

 

지금 우리는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우리 사회에는 권위라는 것이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떨어졌고,
교실에선 선생님의 권위가 떨어졌고,
나라에선 대통령의 권위가 서질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때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 권위라는 것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밀려들기도 한다. 

물론 기존에 우리 사회에 있던 권위가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위압감에서
내리누르는 식의 권위였다면 그런 권위는 사라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권위가 추락했고 권위가 서질 않는 이 시대야말로
어쩌면 권위 있는 분이 더 생각나고 절실한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곳이 가정이든 그곳이 학교이든 그곳이 직장이든
사람이 모여 사는 그 곳에 권위가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되는 일인지 모른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힘든 상황일수록
어느 쪽을 택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일수록
그 때 권위 있는 한 분의 말씀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다시 결속시키는 힘이 있다. 

그렇게 옥신각신 다투던 문제도
권위 있는 분의 한 말씀 앞에서는 모두가 다투기를 그만하고 그분의 말을 따르게 된다.

우리는 살아오는 동안 그런 권위 있는 분들을 만난 적이 있었을 줄 안다. 
그런 분들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분들의 힘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수그러들고 고개를 숙이게 되는 걸까? 
그렇게 의견이 분분하다가도 그분의 말씀 앞에서는 모두가 그의 뜻을 따르는 걸까? 
권위를 가진 분들이 갖고 있는 어떤 공통점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권위를 갖고 계신 분들의 공통점은 “말의 힘”인 것 같다.
권위를 가지신 분들의 말에는 어떤 힘이 있다.
말에 생명력이 있다. 

이는 말재주가 좋다는 것과 다르고,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서 의사 전달이 잘 된다는 것과도 다르다. 
권위가 있는 분들의 한 말씀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비록 말이 어눌하고 말재주도 없지만
권위가 있는 분의 한 말씀 한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바꿔 놓는다는 것이다. 

권위가 있는 아버지의 한 말씀은
그때까지 가족이 서로 다투다가도 다시 가족을 생각하고 사랑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다. 

권위가 있는 선생님의 한 말씀은
그때까지 다른 선생님들을 비난하던 학생들의 마음에
다시 선생님들을 존경하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권위가 있는 지도자의 한 말씀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국민들의 마음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불러 넣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똑 같은 내용의 말인데도 내가 이야기를 하면
들은 척도 안하고 오히려 반발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권위가 있는 분이 그 똑같은 말을 하게 되면 모두가 고개를 숙이게 되니
그건 왜 일까?

두 사람의 “말의 힘”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무엇이 “말의 힘”이 그토록 다르게 나타나도록 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삶이다. 
사는 모습이다. 

몇 해전에 읽은 책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자기 목소리에 책임질 줄 알아라”하는 말이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줄 알라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자기 목소리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내용인즉, 낯선 사람일지라도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서
상대방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충 어떤 사람일 거라는 짐작이 간다는 말이다. 
사실 가만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내 목소리에는 내 삶이 그대로 묻혀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똑같은 내용의 말인데도 내가 하면 설득력이 없는데
권위가 있는 분이 하시면 설득력이 있는 건
결국 그분의 말과 목소리가
내 말과 내 목소리와 분명 다르기 때문임을 알았다. 

내가 살아온 삶과 그분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태도가 달랐기 때문임을 알았다.
철저하게 내 중심적이고,
나를 위해서 내가 출세하기 위해서,
남을 모질게 밟고 올라온 삶이었다면
내 목소리와 내 말투에 그런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재주가 뛰어난 달변가랄 지라도
아무리 많은 학위를 갖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건 그냥 말일 뿐이고
정보나 지식을 전달해 주는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권위가 있는 분의 말씀은 다르다. 
그가 박식하지도 못하고 말재주도 없고 학위도 없다할 지라도
살아오는 동안 그분의 삶이 자기 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늘 남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힘이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이 권위가 있게 들리는 때는
가족을 누구보다 많이 생각하고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며,

선생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게 들릴 때는
학생들의 아픈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려왔기 때문일 것이며,

지도자의 말씀이 권위가 있게 들릴 때는
그가 누구보다도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왔을 때인 것이다.

정직한 사람의 말은 단순하고 솔직하며 위선적인 사람의 말은 교활하고 가식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깊이 헤아리고 멀리 내다 보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피상적이고 즉흥적이다. 

이기주의자의 말은 거만하고 냉정하지만 자기를 비운 사람의 말은 겸허하고 너그럽다.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의 말은 고상하고 신중하지만
자제할 줄 모르는 사람의 말은 경박하고 수다스럽다. 

이렇게 사람의 말과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마음과 그간의 삶이 그대로 베여 나온다는 말이다.
선한 사람의 말은 남을 선하게 하는 힘이 있고
악한 사람의 말은 남을 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선한 말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마음이 선하게 되고
악한 말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마음이 악해진다.

내 목소리와 말은 왜 권위가 없을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내 말은 왜 잘 먹혀들어가질 않을까? 
그건 내가 너무 내 중심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참다운 권위는 내 삶을 가다듬고 내 목소리와 말을 가다듬는데서 시작한다.

진정한 권위를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무엇보다 낮음의 권위를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셨다.

수많은 재소자들과 봉사자들에게 내가 무슨 권위를 내세우겠는가?
많이 어눌하지만, 많이 부족하지만 단지 낮아짐으로 더 낮아짐으로...... 그렇게 살아간다.
가진 능력이 없고, 재주가 없는 나로선 그 방법밖에 없다. 헤헤
그것이 스승님의 삶을 조금이나마 따라가는 것일지라.

난 예수님과 같은 꿈을 꾸고 싶다.


                                                    박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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