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성가정 축일[류해욱신부님] 2007.01.02

2007. 1. 2. 오후 1:53:29

글자
성가정 축일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며 한 해를 마감하는 날입니다. 교회가 성탄 대축일 다음 주를 성가정 축일로 정한 배려의 깊은 뜻을 헤아려 봅니다. 오랫동안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을 성가정 축일로 지내다가 1969년 교회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 팔일 축제내 주일로 옮겨 지내게 되었지요. 그만큼 성가정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한편, 몇 년 전부터 한국 교회에서는 성가정 축일의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기로 하였지요. 요셉 성인과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이 이루는 가정을 특별히 나자렛의 성가정이라고 하지만 일반 신자들의 가정도 성가정이라고 부르지요. 단순히 세례를 받은 신자들의 가정이라고 하여 성가정이라고 부를까요?


  성가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저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이 바로 성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이루는 사랑이 중요합니다. 나자렛 성가정이야말로 바로 거기 하느님 안에서 깊은 일치를 이루는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가 그 사랑을 기억하고 본받자는 의미로 성가정 축일이 제정된 것입니다. 가정 성화 주간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가정 성화의 의미도 다른 뜻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사랑을 하면 성스러움은 자연 따라오게 마련이니까요.


  제가 위인들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비노바 바베의 가정 이야기 한 토막 나눕니다. 비노바 바베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힌두교도였지만 저는 비노바 바베의 가정이야말로 진정한 성가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비노바의 아버지는 종종 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집에 데려와서 묵게 하셨답니다. 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음식이 남은 것이 있으면, 다음 식사에서 어머니가 그 남은 음식, 우리식으로 하면 찬밥을 드셨고, 어머니께서 드시고도 남으면 비노바에게도 찬밥을 주셨답니다. 그런데 집에 데려다 함께 지내는 그 학생에게만은 반드시 따뜻한 밥을 지어주셨답니다. 계속 그런 일이 일어나자, 비노바가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렸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늘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사람을 차별 대우를 하십니다. 어머니는 찬밥은 어머니가 드시거나 저에게만 주시고 그 학생에게는 한 번도 주시지 않잖아요. 그것은 차별대우 없이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머니는 마치 비노바가 그런 말을 할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하셨답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나는 너를 남들과는 다르게 대하는 것이 사실이란다. 나는 너에게 특별한 사랑을 지니고 있고, 실상 편애하고 있지. 왜 그런지 아니? 나는 아직도 너를 내 아들로 생각하고 있고, 그 학생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는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언젠가 내가 너마저 그렇게 볼 수 있는 때가 오면 이런 차별은 없어지게 되겠지.”


  몇 년 동안 도보 순례를 하면서 부자들에게 땅을 받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의미의 토지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비노바 바베는 자기가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모든 힘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받은 신뢰와 사랑 때문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부모는 자기를 철저히 믿으셨고, 그 믿음이 자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유명한 명상록이 [비차르 포타]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려 준 말씀들을 수록하면서 ‘오늘까지도 어머니는 자기와 함께 계신다. 어머니는 떠나지 않고 내 삶의 한 부분으로 계속 남아 있다’고 썼습니다.

  “아, 어머니, 당신은 저에게 다른 누구도 줄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살아생전에 저에게 주시지 않았던 것을 돌아가시고 난 지금도 주시고 계십니다. 저에게 이것보다 더 분명하게 영혼의 불멸을 입증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은 무엇보다 신뢰입니다. 온전히 믿어주고 받아주는 것입니다. 오늘 성가정 축일을 맞아 우리 가정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얼마만큼 가족을 믿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는지 돌아보기로 해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생각하며 깊이 감사드리기로 해요.


  한 해 동안 저에게 나누어 주신 사랑에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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