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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2006. 12. 26. 토평동.
사도 6, 8-10;7, 54-59. 마태 10, 17-22.
얼마 전에 하춘화 특집 방송에서 Imitation 가수 하춘하가 나왔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하춘화란 이름을 빌어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해 온 걸 사과하며, 허락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춘화는 그것을 허락해줬죠. 이 하춘하는 하춘화란 이름으로 그동안 노래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왔다고 합니다. 그 이름값이 있어서, 그 가수의 노래를 흉내내는 것만으로도 벌이가 됩니다. 물론 그 가수의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어야 하죠.
이 방송을 보면서 ‘그래, 우리도 하느님의 모상 즉 Imitation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춘화를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데, 하물며 하느님을 모방하는 것은 오죽하겠습니까? 하느님을 모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사입니다. 주님을 닮는 것이죠. 예수께서는 그런 모습으로 원성사가 되어 하느님을 보여주셨고, 우리는 그 예수를 닮는 사람들입니다. 그 예수를 닮을 때, 생계를 꾸려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하는 성 스테파노. 예수처럼 살다간 분입니다. ‘나를 본받으라’는 예수님의 말씀 따라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성령이 충만한 모습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교회가 성탄을 기념하는 그 다음 날,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리 생각해보면, 성탄의 의미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탄이란 하느님의 자기 비움입니다. 하느님이시면서도 당신을 내어주시려고 기꺼이 인간의 모습을 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편에서도 당신을 기꺼이 내어주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을 내어줌으로 오셨으면서 또 당신을 내어주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이것이 본입니다. 그렇다면 그 본을 따라 살아야 하는 우리는 마치도 본을 따라 만들어지는 작품들처럼 그렇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내 모습대로가 아니라 그분의 모습대로!
스테파노는 그 삶을 선택했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성탄의 첫날, 태어남이란 죽는 것과 같음, 죽는 것이란 태어남과 같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처럼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꺼이 기도할 수 삶, 용서할 수 있는 삶을 살다간 것입니다.
나의 삶을 지금 누구를, 무엇을 본받고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지만, 그의 지혜와 성령에 당해낼 수 없었다고 사도행전은 전합니다.(사도 6, 10) 나는 무엇이 충만하며 무엇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을까요? 누구를 닮고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당신의 모상대로 우리를 만드셨고, 예수께서는 기꺼이 당신을 본받으라 하셨습니다. 허락해 주신 것이죠. 우리의 생계를 뛰어넘어 우리의 영원한 삶을 보장해 주신 허락, 거저 얻은 허락을 우리는 잘 받아 살아야 할 것입니다. |
다해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죽는 것이란 태어남과 같음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28. 오전 1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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