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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축일 |
2006-12-28 |
헤로데의 죄
1독서에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듯이, 오늘 헤로데가 지은 죄, 즉 무고한 어린이들을 살해한 죄는 사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전히 진리에 눈 감고 거짓에 자기를 맡기며 마치 거짓이 진리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겐 누구나 예외없이 헤로데와 같은 죄에 동참하게 된다. 나를 반대하는 사람은 다 적이라거나, 내 뜻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그와 같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크다. 헤로데가 아기를 죽인 것은 자기와 같은 대립 왕이 태어난 것을 거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완전하지 못함 때문일 것이다. 완전하지 못함은 또 나약함과도 같다. 나약하기 때문에 보다 더 강하고 완전한 상대가 나타나면 그의 위엄과 권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강한 사람은 결코 폭력을 쓰지 않는다. 강한 사람은 다만 자신의 권위를 드러낼 뿐이다.
하지만 나약함은 인간의 본성이다. 완전하지 못함도 인간의 본성이다. 그 때문에 하느님은 그 나약한 인간을 상대로 해서 같은 힘을 행사하지 않으시고 피하신다. 이집트로 피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강한 팔로 상대를 치지 않고 더욱 더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강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이다. 주님의 피난은 그분의 희생을 가져왔지만 나약한 헤로데에겐 더 큰 죄를 피하게 해 주었다. 그로 인해 무고한 어린이들이 무더기로 학살된 것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태어나자 마자 하늘나라로 불러주신 것이다. 새옹지마다. 나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좋은 결과가 나쁜 상황을 몰고오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참으로 강한 자가 되길 소망해야 하겠다. 나약함으로 인해 반복되는 죄에 떨어질 것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의 피난과 무고한 어린들의 죽음에서 보듯이, 고통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참고 이김으로써 점점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1독서의 “진리의 빛 속에서 살아감”은 결코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해피한? 상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나약함, 곧 죄로 기울어지는 나쁜 경향을 바라보면서도 그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바르게, 정직하게, 정의롭게 살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의 빛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