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일 강론 /‘복되다’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24. 오후 3:14:23

글자

대림 제4주일 강론


복음 : 루카 1,39-45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성모님과 엘리사벳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친척 어른인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을 때, 엘리사벳은 성모님께 이런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그 당시 세례자 요한을 태중에 품고 있었던 엘리사벳은 자신을 찾아온 친척 아이였던 성모님께서 태중에 하느님의 아드님을 품고 계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성모님의 인사말을 듣고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인사는 태중에 함께 있던 세례자 요한의 인사이기도 할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인사를 통해 성모님과 태중에 계신 예수님을 ‘복되시다’라며 찬미하고 있습니다. ‘복되다’, 과연 어떤 의미에서 엘리사벳은 성모님과 예수님을 복되시다고 표현하는 것일까요?


‘복되다’라는 말은 ‘축복받다’라는 뜻으로 보통 하느님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축복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축복을 뜻합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일생이나 예수님의 일생을 살펴보면 인간의 삶이라는 면에서 과연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나이 서른이 되실 때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온 이스라엘을 돌아다니시며 설교하셨고 가르침을 전하시다가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함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으시고 예수님께서 온 이스라엘을 다니며 가르침을 전하실 때, 옆에서 시중들고 뒷바라지 하시며 다니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그 발치에 앉아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는 아드님의 모습을 보아야만 했으며 돌아가신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울으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성모님께서는 에페소 근처, 산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산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사셔야 했던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동족 유다인들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슬프고 힘든 삶이 과연 복되고 축복받은 삶이었을까요? 무엇이 복되고 무엇이 축복받은 삶일까요? 인간의 눈으로 본 성모님과 예수님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고 슬픔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을 복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 할 때마다 성모님을 은총이 가득하신 분, 여인 중에 복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때, 성모님은 가장 고통스럽고 슬픈 삶을 사신 분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성모님께서는 가장 복된 삶을 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한 평생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통해 인간이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도록 협력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한 생명을 내어 놓는다는 것, 그것은 평생 그 생명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렇게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는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개인적인 모성을 넘어서서 사랑하시는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자녀로써 돌보시는 더 큰 모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성모님의 삶은 고통과 슬픔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성모님의 삶은 결코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한 삶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신앙의 눈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이 세상 너머에 있는 하느님 나라도 함께 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성모님의 삶은 슬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끝은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시작임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의 고통과 시련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위해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삶을 몸소 모범으로 보여주시고 살아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모님을 복되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복음은 우리에게 성모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복된 삶을 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처럼 복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도 성모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예수님 곁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
대림 제4주일 - ‘엘리사벳의 위로’ - 홍금표 신부님06.12.24조회 31다해 대림 4주일 -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 이찬홍 신부님06.12.24조회 30대림 제4주일 강론 /‘복되다’ - 이기양 신부님06.12.24조회 31<대림 제4주일> 태중 아기로 만난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기양 신부님 / 2006.12.2406.12.24조회 30하느님의 선물’ 또는 하느님은 은혜로우신 분 - 한창현 신부님 /2006.12.2406.12.24조회 30대림 제4주일 2006.12.24/행복하십니다 - 민경철 신부님06.12.24조회 30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2006.12.2406.12.24조회 30대림 제4주일 2006년 12월 24일/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 이진용 신부님06.12.24조회 30대림 제4주일 2006/12/24 /행복할 수 있다 - 박용식 신부님06.12.24조회 30[묵상] 지옥 그리고 자실에 대하여........... 송재훈 마르코 신부님 /2006.12.2306.12.24조회 30[묵상] 자살.......................송재훈 마르코신부님 /2006.12.2306.12.24조회 30[강론] 기쁨과 행복의 이유(대림 제 4 주일)...배진구신부님06.12.24조회 30[강론] 대림 4주일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06.12.24조회 30[강론] 하느님의마음~김웅열토마스아퀴나스신부님 대림3주일강론 /2006.12.2306.12.24조회 30[강론] 요한[홍성만 신부님] /2006.12.2306.12.23조회 30[묵상] 파파노의 성탄절 /2006.12.2306.12.23조회 30아기가 소리를 들어요 - 이기정 신부님 /2006.12.2306.12.23조회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