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지요. 자신을 참된 자신의 참자아와 이웃과 하느님과 모두 격리시켜 자신을 완전한 고독속에 가두어버리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입니다.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벌입니다. 비구원은 하느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이 그릇된 선택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모든 관계(나 자신(참자아), 이웃, 하느님, 모든 인격적인 존재, 사물 등)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인간의 고독을 생각하십시오. 자살이란 죽음 이후에 영원토록 이어질 이 고독을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죽음 이후엔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관계 안에서 비로소 변화할 수 있는데 모든 관계에서 단절되었으므로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미움, 무가치함, 분노, 마음의 고통, 원한, 상처 등 죽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가지고 영원토록 자신을 괴롭히고 파괴하는 습성을 반복하게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옥입니다. 죽음은 결코 마지막도 아니고 끝도 아닙니다. 죽음은 단지 삶의 마감도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존재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죽음은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한 부분입니다. 아니 죽음이란 본래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인간의 무명(無明)이 만들어낸 착각일 뿐입니다. 죽음이란 삶이 계속된다는 표징일뿐입니다. 사람 눈으로 보자면 삶이 모양을 바꾸어 삶을 계속하는 것뿐입니다. 죽음이란 눈에 보이는 형상에 매인 사람들의 눈에나 죽음이지만 (그래서 자신의 형체에 매이고 죽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채 죽음 이전의 상태를 고집합니다.) 깨달은 이에겐 삶도 죽음도 없고, 자신의 형체도 없으며 '나'라고 고집할 것도 없으며 하느님과 나와의 경계가 없고 또 본래 자신이 하느님과 깊이 일치해있었고 그런 하느님과 기쁨을 나누고있음을 보게될 것입니다. 사람은 삶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래의 풍요로움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아직 발굴하지 못한 삶의 수많은 풍요로움이 있음을 알아보셔야합니다. 그리고 찾아내야합니다. 바로 믿음과 성사, 기도 이 모든 것들이 주님께서 주신 본래의 풍요로움을 이끌어내기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우리는 행복에로 초대받았고 불림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부르심입니다. 사람을 망치는 인간의 악과 자신의 악습의 굴레에 매이는게 낳겠습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굴레에 매이는게 낳겠습니다. 저는 단언하건데 자신과 다른사람의 악과 어리석음, 고통을 지고 사느니 차라리 하느님의 계명을 지는 것이 백번 낫다고 생각하고있고 바로 이것이 제가 하느님을 열심히 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전의 악습과 고통을 무엇하러 반복하겠고 사람에게 시달리겠습니까?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이 훨씬행복하다고 저는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믿음을 받아들이면 그분의 굴레에 메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굴레를 벗어 부수어버릴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래의 풍요로움을 발굴케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의 굴레입니다. 인간은 살아있는 지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영원과 '바로 지금'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보아야합니다. 죽음 이후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따라다닙니다. 마치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 다니듯 말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어려움이든 삶의 어려움이든 이겨내시고 풀어가시도록 힘내시기바랍니다. |
[묵상] 자살.......................송재훈 마르코신부님 /2006.12.23
2006. 12. 24. 오후 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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